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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도끼 은도끼 _ 욥9:25~10:22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4.07.27|조회수154 목록 댓글 0

기도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닙니다. 기도한다고 해서 부자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일천번제를 드린다하여 부자가 되는 거 아닙니다. 십일조를 미리 한다고 해서 십일조의 열배 소득이 생기는 거 아닙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더 많이 가진 자로 만들어주지 않으십니다. 

 

기도는 알라딘의 요술램프가 아닙니다. 기도한다고 소원이 이루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백일기도를 드린다 해서 취직이 되는 건 아닙니다. 이상형의 세목을 적어 기도했는데 이상형과 결혼해보면 아차 싶습니다.

 

기도는 마법사의 주문(呪文)이 아닙니다. 기도는 전문가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하나님께서 알아듣는 언어가 따로 있어서 마법 책을 연구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열려라 참깨’ 같은 주문을 잊어버리면 기도의 문을 열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는 신비한 단어들의 조합이 아닙니다. 그러면 기도는 무엇일까요?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를 올릴 수 있을까요?

 

기도는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욥10:1) 기도는 내 속을 뒤집어 하나님께 보이는 것입니다. 기도는 뒤집힌 마음 그대로를 하나님께 가져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불평을 토로하고 괴로운 마음을 쏟아내는 게 기도입니다. 심지어 저주도 기도가 됩니다. 욥은 ‘자기 생일을 저주’하기도 했습니다.(욥3:1)

 

‘불평’과 ‘저주’가 기도가 될 수 있는 것은, 기도를 들으시는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불평과 저주를 말하는 나 때문이 아니라, 불평과 저주를 들으시는 하나님 때문에 불평과 저주라도 기도가 됩니다. 불평을 듣는 이가 하나님이면 불평이라도 기도입니다. 저주를 듣는 이가 하나님이면 저주라도 기도입니다. 불평을 사람이 들으면 듣는 사람은 기운이 빠지고 저주를 사람이 들으면 듣는 사람의 피가 마르지만, 불평과 저주를 하나님이 들으시면 그건 기도가 됩니다. 기도는 그 표현방식이 거룩해서가 아니라, 듣는 이가 거룩해서 기도가 됩니다. 그 표현방식이 불평이요, 저주라 해도 들으시는 이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라 불평도, 저주도 기도가 됩니다.(욥9:16)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 아시지요. 가난한 나무꾼이 쇠도끼를 어깨에 걸치고 산에 올라가 나무를 벱니다. 손에 땀이 차 미끄러웠을까요, 기운이 없어 도끼날을 수피(樹皮)에 박지 못해 튕겨 나갔을까요, 나무꾼은 도끼를 놓쳐 연못에 빠뜨려버립니다. 어쩌면 전 재산이었을 도끼를 연못에 빠뜨린 나무꾼은 주저앉아 통곡할 뿐입니다. 전 재산인 도끼가 가라앉아 있을 깊은 연못 바닥으로 빠져 죽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죽지도 못하는 자기 자신을 저주하며,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자기 형편을 불평하며 그저 울뿐입니다. 더 이상 나무 밑둥을 향해 도끼질 할 수도 없고, 나무하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내려갈 수도 없어 그저 불평과 저주 속에 울뿐입니다.

 

기도는 이런 겁니다. 기도는 쇠도끼를 연못에 빠뜨린 가난한 나무꾼의 통곡입니다. 쇠도끼를 빠뜨린 나무꾼은 도끼를 찾기 위해 우는 게 아닙니다. 도끼를 연못에 빠뜨린 나무꾼은 도끼를 찾을 거라고 꿈에도 생각지 않습니다. 나무꾼은 도끼를 찾기 위해 우는 게 아니라, 도끼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우는 겁니다. 나무꾼의 기도엔 목적이 없습니다. 운다고 해서 해결책이 생기는 게 아닌 줄 알지만, 우는 거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어 우는 거, 이게 기도입니다.

 

무엇을 요구해야할지도 모르는 때에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중요한 것은 대상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나를 정죄하지 마시옵고 무슨 까닭으로 나와 더불어 변론하시는지 내게 알게 하옵소서”(욥10:2)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거든 하나님 앞에 울고 불평하고 저주하며 그저 울겠습니다. 더 이상 쏟을 눈물이 없어 눈물이 내 얼굴을 적시지 못할 때에, 내 마른 눈물에 하나님 마음이 젖습니다. 아멘.

 

욥처럼 아프고, 욥처럼 다 잃었고, 욥처럼 외롭습니다. 욥만큼은 아니어도, 누구나 욥처럼 아프고 가난하고 외롭습니다. 불평하고 저주해도 됩니다. 사람에겐 말고, 하나님에게 불평하고 저주하겠습니다. 불평과 저주를 사람에게 쏟으면 군대같이 나를 괴롭게 하지만,(욥10:17) 하나님께 토로하면 사람을 도우십니다.(시40:17) 산신령이라도 우는 나무꾼에게 금도끼 은도끼를 안겨주었는데, 하물며 하나님이겠습니까.

 

불평과 저주 속에 우는 사람들에게 금도끼 은도끼 주셔서, 우는 자들을 위해 집도 짓고 마을도 세우게 하소서. 우는 자들이 ‘국가 개조’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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