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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_ 요일5:13~21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4.09.07|조회수214 목록 댓글 1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신31:6)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남긴 유언입니다. 여호수아가 유약하고 소심해졌기 때문입니다. 믿기 힘들지만 여호수아가 유약하고 소심해졌습니다. 그 용맹하던 여호수아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히브리 사람들이 광야를 지나오는 동안 치렀던 모든 전쟁의 장수였고, 무수한 승리를 경험한 역전의 용사입니다. 히브리 백성들이 서 있는 곳, 지나가는 길 모두가 전쟁터였습니다. 사방이 트인 광야에서 여호수아는 히브리 사람들의 망루였고, 성채였고, 창검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각반을 풀고 잠든 날이 없었을 겁니다. 자그마치 40년 동안 여호수아는 용장이었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는 모세의 유언이 언뜻 생뚱맞게 들립니다. 40년 동안 전쟁을 치르며 무수한 승리를 경험한 역전의 용사에게 남겨야할 유언인지 갸웃합니다. 이 여호수아가 약하고 소심하다니요.

 

모세는 죽을 때에도 눈이 밝았습니다. 마지막까지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총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계명은 돌판에 새겨지기도 했습니다. 돌판에 새겨진 십계명은 하나님의 말씀이면서, 하나님을 직접 뵙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모세의 육성이기도 했습니다. 죽을 때까지 총총했던 모세의 마지막 말 한 마디 한 마디도 돌에 새기듯 남긴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얼른 듣기에 생뚱맞은 유언을 남긴 이유는 역전의 용사 여호수아가 치러야하는 전쟁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여호수아가 맞이한 적들은 패배한다 해도 크게 잃을 것이 없었습니다. 광야에서 여호수아에게 쓴 맛을 보고 물러나면, 그만이었습니다. 적들은 군대의 손실은 있어도, 땅을 잃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여호수아가 치를 전쟁은 땅을 놓고 싸우는 것입니다. 적들은 여호수아에게 지면 땅을 빼앗길 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 지면 설 곳이 없어집니다. 전쟁의 양상은 달라질 것입니다. 악착같이 싸울 것입니다. 진짜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광야에서는 누구도 토둔이나 성채의 보호를 받지 않았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에게 없던 것은 적들에게도 없었습니다. 광야는 위험했지만 적군과 아군 모두에게 위험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부턴 성벽을 넘어야 합니다. 게다가 성벽 위에 선 사람들은 장대하기로 소문난 아낙 자손이었습니다. “그 성읍들은 성벽은 하늘에 닿았으며 크고 많은 백성은 네가 아는 아낙 자손이라 그에 대한 말을 네가 들었나니 이르기를 누가 아낙 자손을 능히 당하리요”(신9:1~2)

 

여호수아라고 왜 흔들리지 않겠습니까. 거대한 성벽이 막아섰고, 장대한 사람들이 그 위에 우뚝한데, 어떻게 흔들리지 않겠습니까. 역전의 용사 여호수아라 해도 앞으로 치러야할 새로운 전쟁을 앞두고 마냥 의연할 순 없습니다. 이 상황과 여호수아의 마음을 꿰뚫어 본 모세의 간곡한 유언이 바로 “강하고 담대하라”입니다.

 

전쟁은 있습니다. 진정 그리스도인이라면 전쟁을 치르기 마련입니다.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요일3:13)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세상의 미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 성벽 위에 우뚝 선 아낙 자손 같은 사람의 미움을 받을 때면 누구라도 약해지고 소심해집니다. 의연함은 껍데기일 뿐, 심장은 오그라들고 혈관은 움츠러듭니다.

 

역전의 용사 여호수아도 버거워했던 그 전쟁을 어떻게 치러내겠습니까?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5:14) 기도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담대합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남긴 “강하고 담대하라”는 유언은 ‘기도하라’의 다른 표현입니다. 모세가 전쟁 중에 손을 내리지 않고 기도했던 것처럼,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출17:11~12) 전쟁이 두려운 이유는 기도하지 않아서 입니다. 전쟁에서 패하는 이유는 군대의 수가 적고 무기가 후져서가 아니라,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뜻대로’ 기도하는 사람은 담대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기 마련이라, 그 뜻을 알고, 그의 뜻대로 기도하면 담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뜻’은 무엇입니까? 저 성벽 위에 우뚝한 아낙 자손들, 즉 저 성읍을 지배하는 범죄자들도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형제가...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그리하면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요일5:16)

 

범죄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저들도 생명을 얻는 것이라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영생이지 않겠습니까. 저들이 잘 살도록 기도하면, 내게 더 좋은 삶이 임합니다. 나를 향해 전투 대오를 짜는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 담대해집니다. 죽음이 생명을 덧입고, 유한한 사람이 영생을 사는 줄 알아 담대해집니다.

 

기도해주는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서 성벽을 쌓으시고,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사람에게 어깨를 내주십니다. 하나님의 어깨를 타고 앉으면, 오히려 장대한 아낙 자손이 메뚜기만 합니다.(민13:33) 기도해주는 사람이 이깁니다.

 

그의 뜻대로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십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수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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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hanna | 작성시간 14.09.11 제게 주시는 말씀으로 무겁게 받고, 아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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