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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 안에, 그가 우리 안에 _ 요일4:7~21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4.09.14|조회수107 목록 댓글 0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예수님께서 서로 사랑하라 하십니다. 좋아하면 사랑하기 쉽습니다. 연인들이 서로 사랑합니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 사랑합니다. 친구들이 서로 사랑합니다. 굳이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떠올리지 않아도 좋아하면 서로 사랑합니다.

 

예수님께서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신 대상은, 가족들이나 친구들같이 서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서로를 좋아하기보다 경쟁했습니다. 하나님나라가 왔을 때,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게 될지를 두고 서로 다투었습니다.(마20:20~24) 제자들은 서로를 좋아하기보다 서로 긴장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로마 당국에 협조적인 세리와 로마에 부역하는 자들에게 칼을 던지는 열심당원이 함께 예수님을 따랐습니다.(눅5:15) 예수님의 제자들은 서로 좋아할만한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제자들이 서로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모임이었기 때문입니다. 좋아하지 않으면, 사랑이 어려우니까요. 제자들 사이사이 경쟁과 긴장이 가득해서, 사랑과 우정이 비집고 들어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며,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하셨던 이유입니다.(요13:34) 

 

예수님께선 사람을 좋아하라 말씀하시지 않고, 사랑하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심지어 “원수를 사랑하라”하셨습니다.(마5:43) ‘원수를 사랑하라’는 난제 중 난제입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 중 가장 난해합니다. 머리로 이해하기 어려워서가 아니요 가슴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고, 가슴으로 받아들인다 해도 몸으로 실천하는 건 참으로 까다로운 난제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난제는 가장 어려운 시험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멍에’같습니다.(행15:10)

 

다윗에게 원수가 있었습니다. 왕이자 장인인 사울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벽에 박으려고 창을 던졌고, 자객을 보내 암살하려 했고, 군대로 다윗을 추격했습니다. 추격당하던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사울은 캄캄한 동굴 속에 다윗이 있는 줄 몰랐고, 다윗은 사울의 등에 칼을 꽂을 수 있었습니다. 원수를 죽이고 왕권을 차지할 수 있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가 찾아온 겁니다. 그런데 다윗은 추격자 사울의 옷만 베고는 다시 도망갑니다.(삼상24:4)

 

이것이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드는 사울을 좋아했을 리 없지요. 다윗은 사울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사울을 사랑한 겁니다. 다윗이 원수 사울을 좋아하지 않아도 사랑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기름을 부으셨기 때문입니다.(삼상24:6) 사울은 나쁜 왕이요 자신을 죽이려들지만, 사울도 하나님에게 은총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왜 사울뿐이겠습니까.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습니다.(창1:27)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향기로운 기름을 부어주셨습니다.(벧전2:9)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은총 아래 있고,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음을 아는 것,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오직 성령께서 도우셔야 가능합니다.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요일4:13)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한다 하십니다.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다윗과 사울이 ‘그 안’에 거하고,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세리와 열심당원이 ‘그 안’에 거합니다. 나아가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빈자와 부자가 ‘그 안’에 거하고,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보수와 진보가 ‘그 안’에 거하고,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남한과 북한이 ‘그 안’에 거하고,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외국인과 내국인이 ‘그 안’에 거합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나에게만 주시지 않고 우리에게 주십니다. 모든 사람에게 햇빛을 비추시듯 나와 우리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나와 원수가 합하여 우리입니다.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니, 나와 원수가 서로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다윗이 사울을 사랑하겠다고 섣불리 나서다가는 죽기 십상이었겠지요. 원수를 사랑하려면 먼저, 원수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마5:44) 기도하지 않고 베푸는 사랑은 자기 파멸에 이르기 십상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랑은 위험합니다.

 

원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합니다. 원수를 위해 기도할 때, 원수와 나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원수를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원수와 나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신비가 기도할 때 현실이 됩니다.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서로 사랑하라’는 ‘멍에’는 쉽고 가볍습니다.

 

서로 사랑하게 하시는 성령을 구합니다.(눅1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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