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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 _ 창16:1~16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4.09.28|조회수272 목록 댓글 0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여종을 씨받이로 삼았습니다.(창16:2) 여종 하갈은 씨받이로서 역할을 잘 해냈습니다. 임신이 된 것입니다. 임신한 하갈을 보자, 사라의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하갈을 씨받이로 삼은 것은 사라의 기획이었지만, 막상 남편의 아이를 임신하는 걸 보니 심난해졌습니다. 심난한 터에 하갈도 주제 넘는 행동을 합니다.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창16:5) 

하갈은 자기와 사라의 지위가 역전되었다고 판단했을까요. 하갈은 여주인 사라를 ‘멸시’했고, 사라는 이것을 ‘모욕’으로 받아들였습니다.(창16:5) 모욕을 참을 수 없었던 사라가 하갈을 학대하였고, 학대를 피해 하갈은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임신한 여자에게 광야는 죽음의 땅입니다. 광야에 계속 머무른다면 하갈은 뱃속의 아기와 함께 죽게 될 것입니다. 하갈이 여주인을 멸시했던 것처럼 밤하늘의 별빛도 하갈을 멸시하는 것만 같습니다. 밤하늘의 별빛은 차가웠고 하갈은 광야에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이라면 위급한 처지의 사람을 구원해주실 수 있겠지만, 하갈은 내세울 게 없습니다. 하갈은 미스라임의 후예인데, 미스라임은 저주를 받았드랬습니다.(창9:25) 임신한 것을 무기 삼아 여주인을 멸시했던 하갈은 착한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시다 한들, 저주받은 자의 후손이요, 착하지도 않은 하갈이 하나님과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사람이 별에 닿을 수 없듯, 하갈은 하나님을 뵐 길이 없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라”(창16:11)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가 하갈을 찾아왔습니다. 착하지도 않고 저주받은 자의 자손 하갈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천사가 하갈에게 나타난 건 광야에 서 있는 하갈에게 분명 천행이었지만, 이해할 순 없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창16:13) 저주받은 자의 후손 하갈에게, 여주인을 멸시하다가 쫓겨난 하갈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은 얼른 납득되지 않는 사건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높이 올라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뵐 순 없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래서 어쩌면 슬픈 것입니다. 사람이 손을 뻗는다 해서 닿을 수 없고, 그래서 만날 수 없는 하나님의 존재는 슬픈 것입니다. 하갈 역시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하나님을 자신이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비현실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하갈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여기서 하나님을 뵈었는고?”(창16:13)


 

 고흐, <별이 빛나는 밤>, 1889, 뉴욕현대미술관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에 이러한 하갈의 마음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높디높은 삼나무가 하늘을 향해 솟구치듯 줄기 가지를 뻗지만, 하늘에 있는 별에 닿지는 못합니다. 삼나무는 고흐 자신의 자화상일 겁니다. 아무리 별에 이르려 해도, 별에 닿을 수 없는 절망을 고흐는 그려보였습니다.  

하나님이 오셔야 합니다. 별빛이 삼나무에게 쏟아지지 않으면, 삼나무가 별에 이를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오시지 않으면, 사람이 하나님을 만날 길이 없습니다. 하갈은 하나님을 만날 만큼 선한 사람이 아니었듯, 누구라도 하나님을 만날 만큼 선하진 않습니다. 사람은 별을 품을 자격이 없습니다. 별이 사람을 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오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왜 하갈에게 오셨을까요. 하갈은 어떻게 별을 품게 되었을까요.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창16:11) 사람이 고통당할 때, 하나님의 안테나는 예민해집니다.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오십니다.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채널을 고정하시고, 그의 고통을 들으십니다. 그리고 오십니다. 저주받은 자손이어도, 전과가 있어도 고통당하는 사람을 품으십니다. 

손톱 아래 가시도 고통이요, 뼈에 박힌 죽창도 고통입니다. 고통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별이 빛나는 밤’이 있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 고통에 지쳐 잠들어있는 모든 사람에게로 하나님께서 내려가십니다. 


 140928_민들레주보.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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