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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기억하라 _ 요3:13~15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5.02.08|조회수112 목록 댓글 0

뱀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창3:14) 뱀은 아담과 하와를 꾄 죄로 배로 땅을 기어야하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지상을 움직이는 생물 중 저주를 받은 뱀보다 낮은 자리에 사는 것은 없습니다. 뱀은 온 몸으로 바닥을 밀어내며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사람을 저주 받은 자라 여겼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3:13) 십자가는 죽음에 이르는 시간을 길게 끄는 사형 도구였습니다. 매달린 자에겐 고통을 지속시키고, 바라보는 자에겐 공포를 가중시키는 형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습니다.(요1:14) 마구간에서 태어나셨고,(눅2:7)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눅2:24) 땅 중에도 가장 낮은 땅으로 오셨습니다. 저주받아 배로 땅을 기어야하는 뱀처럼, 예수님의 출생과 성장은 낮고 낮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뱀의 형상을 만들어 하늘로 들라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민21:8) 모세가 놋으로 뱀을 만들어 하늘로 들어 올렸습니다.(민21:9) 온 몸으로 바닥으로 기어야하는 저주 받은 짐승을 하늘로 들어 올렸습니다.

 

바라본다는 것은 소원한다는 것입니다. 놋으로 만든 불뱀을 바라본다는 것은 저주받는다 해도 하늘로 들리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흠모하는 것은 저주받는다 해도 십자가에 매달려 하늘을 살기를 소원한다는 것입니다. 저주받은 인생이라 혀 차는 소리를 들어도 하늘을 소원한다는 것입니다. 팔자가 기박하다고 소곤대는 소리를 들어도 하늘을 소원한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하늘에 매달린 자의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기대하는 사람은 장대위에 달린 놋뱀처럼,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처럼 저주를 받는다 해도 하늘을 살기를 소원합니다. 옛날 광야를 지나던 사람들이 저주 받은 짐승 뱀을 보고 살았던 것처럼, 저주받아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를 바라볼 때 구원받습니다.

 

문제를 만나면 사람은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 길을 가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민21:4) 우회하고 싶습니다. 우회하면 안전할 줄 알지만, 돌아가도 뾰족한 수는 없습니다. 돌아서 가는 길도 사람이 만든 길이기 때문입니다. 땅에 있는 더 좋은 길을 찾아보지만, 땅에 난 길은 중력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땅에 난 길 어디를 가도, 거기엔 땅의 문제가 똬리 틀고 있습니다.

 

우회하여 더 좋은 길을 찾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죽음을 겪게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민21:6) 거친 것을 피하려 하면, 잔혹한 운명에 덮치고 맙니다. 잔혹한 운명을 만난 데엔 이유가 있습니다. 땅을 딛고 사는 이에게 닥치는 잔혹한 운명은 하나님의 간곡한 나팔소리입니다.

 

나팔소리 울리거든 하늘을 보겠습니다. 잔혹한 운명이 찾아오거든 저주받은 생명이라 작대기질 당하는 뱀을 보겠습니다. 잔혹은 운명에 휩싸이거든 세상과 불화하다가 창에 찔리고 채찍 맞으신 예수님을 보겠습니다. 저주받은 뱀이 광야에서 들리고, 세상과 불화하셨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린 것처럼, 하늘에 매달리기를 소원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밀레, <죽음과 나무꾼>, 1859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 옛날 수도사들이 서로 건네던 인사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과 저주받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에게 ‘영생’이 열립니다. 죽음을 기억하고, 죽음 앞에 세상의 모든 문제를 놓으면 답이 보입니다. 뭇 사람들이 저주라 생각하는 죽음이 믿는 자에겐 복이 되는 답을 알려줍니다.

 

메멘토 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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