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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낮은 곳을 향하여 _ 요3:16~17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5.02.17|조회수88 목록 댓글 0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실까요? 교회를 사랑하실까요?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교회를 세우시기 전에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구요,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다섯 번이나 보시기에 좋았다 하셨습니다.(1:4;10;25;31)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3:16)

 

교회는 예수님의 재림, 예수님의 다심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1:24) 교회는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시기 위한, 하나님께서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 나라의 전위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신 것처럼, 세상을 사랑하셔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신 것은 그저 교회를 이루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교회를 이루어,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몸 되어, 예수님처럼, 세상을 사랑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처럼, 세상을 위해서, 자기 목숨까지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내어 주는 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10:45)

 

교회는 다시 오실 예수님의 몸입니다. 교회는 궁극적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지만, 교회가 곧 예수그리스도라고 잘라 말할 순 없지만, 세상은, 교회를 보면서, 다시 오신 예수님을 기대합니다.


세상은 교회를 통해 다시 오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세상은 교회를 통해 다시 오신 예수님을 경험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는 다시 오신 예수님과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오신 예수님이 과연 믿을 만한 분인지, 다시 오신 예수님이 진정 세상을 사랑하는지, 다시 오신 예수님이 세상을 섬겨주는지, 다시 오신 예수님이 세상을 구원할 만한 분인지, 세상은 지켜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땅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보좌를 버리고, 천민의 요에 앉으셨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보좌를 버리고, 짐승의 여물통으로 오셨습니다.


교회가 예수그리스도의 몸이라면, 교회는 하늘에서 땅으로 오신 예수님처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님처럼, 보좌를 버리고, 짐승의 자리로 오신 예수님처럼, 교회는 세상의 낮은 곳으로 가야합니다. 교회는 짐승의 자리로 가야합니다.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상은 예수님의 몸인 교회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교회를 통해 다신 오신 예수님을 뵙고자 성문 밖에서 신음하며 대상을 모르는 것들을 향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무엘 베게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 나오는 두 사람처럼, 세상 사람들은 허무하고, 냉소적인 대화들을 나누면서, ‘고도(Godot)’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도(Godot)’'하나님(God)'이라 해석한다면, 세상은 허무와 냉소 중에 하나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끝내 하나님께서 오시지 않습니다. 허무와 냉소 중에 먼지 이는 길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다리고 있지만, 하나님은 끝내 오지 않는다는 게, 희곡의 끝입니다.

 

세상은 다시 오신 예수님이, 즉 교회가, 허무와 냉소 중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해주길 기다리고 있지만, 교회는, 즉 다시 오신 예수님은 끝내 오시지 않습니다. 세상이 교회를 인정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오히려, 세상은 교회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는 교회를 세상은 의심하고 있습니다.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외면한 채, 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외면한 채,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가는교회가 과연 그리스도의 몸이 맞는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그것은 단순한 종교적 회심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박해자였던 바울이 박해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9:1~2;14:19) 바울이 그리스도인 됐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는 사람이었다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죽을 수 있는 사람이 됐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권력을 잡을 수 있는 대통령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국가의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을 당선 시킬 수 있을 만큼, 영향력이 커졌습니다. 감사하고, 자축할 일입니다.


더불어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교회가 본질을 잃어버리기 시작한 것이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부터라는 것, 교회가 부패하기 시작한 것이 교황의 권리가 강해지기 시작하면서부터라는 것, 교회가 타락하기 시작한 것이 교황의 권력이 황제를 능가하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는 것, 그것이 역사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마침내 군대를 움직일 수 있을 만큼 권력을 갖게 되었을 때, 그 때, 교회는 이미 그리스도의 몸이 아닙니다.

 

영생은 권력을 위임받아 박해하던 사울의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박해받던 바울의 것입니다. 영생은 마구간 짐승의 자리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예수님이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사실은 믿는 자에게 새롭게 열리는 시간입니다. 영생은 여기 누추한 자리에서 예배드리는 민들레교회 교유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새해에도, 낮은 사람들을 사랑하며 영생의 복 누리세요.

 

 

첨부파일 150222_민들레주보.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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