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故 윤보영 사모님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5.03.01|조회수136 목록 댓글 0

단일민족이란 말은 아이누족·오키나와 주민의 독자성을 무시하는 것은 물론,

한국인까지도 '우리 일본인과 단일한 존재'로 취급하여 황민화하려는

일제의 프로파간다로부터 이입·이식됐다.

박노자,『하얀가면의 제국』중


우리에게 단일민족이라는 신화가 있지요. 우리는 순수혈통이라는 미망에 사로잡혀 외국인들을, 특히 흑인이나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열등한 사람이라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착각입니다.


우리 역사에 녹아있는 건국신화 중, 알에서 깨어나고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이 나라를 세운 이야기가 많은 것도 역사 속에서 부단히 외부 세력이 들어왔다는 반증이요, 적어도 우리 나라 성씨의 60%이상이 외래 성씨들입니다. 잦은 일본의 침략을 받았고, 청나라와 명나라에 인신을 조공해야했고, 원나라의 속국이나 다름없었는데, 단일민족·순수혈통의 신화란 허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예수님 살던 때에도 순수혈통 우월주의가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갖는 우월감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하면서 유대 땅 이북에 외부인이 들어오면서 혼혈이 되었는데, 유대 사람들은 혼혈이 된 사마리아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유대 사람도 사람이요 사마리아 사람도 사람인데, 유대 사람들은 사람보다 지역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소위 순수혈통이라 자긍하는 유대 사람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의 예루살렘 성전 출입을 막았습니다. 혼혈은 성전에서 예배드릴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리심산에 따로 성전을 세우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국난을 겪은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을 예배의 대상으로 믿어 성전에서 예배드리고 싶었지만, 예루살렘으로 갈 수 없어 그리심산에 성전을 건축한 것입니다.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드렸지만, 개운하지 않았습니다. 진짜 예배를 드리려면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려야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사그라들지 않는 의혹을 품고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요4:20) 사마리아 사람들이 드리는 그리심산 예배가 효력이 있는 것인지 묻는 것이지요.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사마리아 여인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4:21~24)


예배드리는 공간은 중요하지 않고, 시간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예배하는 공간보다 ‘예배할 때’가 중요하다 하십니다. 구별된 공간보다 구별된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훗날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그 때 사람들은 ‘집’에 모여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행2:2) 집에서 예배드리면 어떻습니까? 구별된 시간이 집을 덮어 ‘영과 진리로’ 예배드린다면, 그 집이 옛날 예루살렘 성전보다 거룩합니다. 하늘의 시간이 공간을 덮으면, 어떤 소박한 공간도 거룩한 성전이 됩니다.


지역과 혈통에 맞춤한 예배 처소가 따로 있다는 가르침은 진리가 아닙니다. 사마리아와 유대는 지역적으로 분명 다르지만, 사마리아 사람도 유대 사람도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 영성입니다. 육적인 생각에 머물렀다면 유대인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에게 말을 건네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이 아니라 영으로 사람을 대하십니다. 영으로 사람을 대할 때, 유대와 사마리아라는 더께는 훌훌 날아가고 사람만 남습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것, 이것이 영성입니다. 어떤 사람을 유대 사람이라 구별하고, 또 어떤 사람을 사마리아 사람이라 차별하는 것, 이것은 진리도 아니요 순수도 아닙니다.


부고를 받았습니다. 파로스 선교회 윤보영 사모님께서 2월 28일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받았습니다. 파로스 선교회는 경기도 시흥시에 식당과 고시원이 들어선 상가 건물에 예배당을 꾸리고 태국인들을 섬기는 공동체입니다. 선교회 대표이신 선우장 목사님은 칠십이 거의 되셨는데, 여전히 태국인들이 있는 공장 기숙사들을 다니시며 고충을 처리해주고, 태국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십 니다.


윤보영 사모님께서는 이미 십여 년 전에 말기 암 판정을 받으셨지만 최근까지 예배에 참석한 태국인들의 식사를 도맡으셨습니다. 사모님께서는 아픈 몸으로 떡도 나누고 뜻도 전하시며 사랑하시다가 어제 잠드셨습니다.


저는 부고를 받고서야 사모님 존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네 수많은 할머니, 어머니들처럼 그야말로 이름도 없이 일하셨던 겁니다. 거기 태국 사람과 한국 사람이 만나는 우물가 같은,(요4:7) 상가 건물에 얇은 봉투 들고 찾아갑니다. 부끄러운 심장 가리기 위해 옷깃 여미며, 거기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태국 사람들 눈물 흘리는 자리에 인사드리고 오겠습니다. ‘주께 드릴 열매 가득 안고’ 꽃 길 가시는 윤보영 사모님 배웅해 드리고 오겠습니다. 투병 중에도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주고, 먹여주고, 그리스도를 소개해주신 의인이 누워계신 자리에 꽃 올리고 오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사모님. 수고하셨습니다.(고전15:58)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