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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다 _ 행2:1~21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5.04.19|조회수106 목록 댓글 1

‘집’에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가득했습니다.(행2:2)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에게 임했던 곳은 ‘집’이었습니다.(행2:3) 그 ‘집’에는 천하 각국으로부터 온 ‘경건한 유대인들’이 머물고 있었습니다.(행2:5) 숙박업을 하는 곳이었다면, ‘집’이라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 ‘집’은 명절을 맞아 각국에서 들어온 나그네들을 대접하는 ‘집’이었겠습니다. 집 주인은 아직 갈 길을 찾지 못한 갈릴리 사람들이 길을 찾기까지 거처를 내주었고, 외지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에게도 방을 내주었습니다. 품이 큰 사람입니다. 그 ‘집’에서 기도하던 갈릴리 사람들에게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2:4) 언어들은 실로 다양했습니다. 명절을 맞아 기거하던 각국 나그네들이 자기들 나라에서 듣던 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도다”(행2:9~11) 성령 충만의 증거는 소통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자기 한계에 갇히지 않고, 경계를 넘어 자기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합니다.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게 됩니다.(행2:11)

 

소통은 언어로만 이루어지진 않습니다. 언어 외에도 소통의 도구는 다양합니다. 청각장애인들과 수화로 대화하는 것, 시각 장애인들을 위해 점자를 만들어 내는 것 또한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행한 ‘하나님의 큰일’입니다. 하나님의 큰일과 성령 충만이라는 게, 종교 영역으로 제한될 리 없지요. 일상의 공간인 집에서 기도하던 사람들에게 임했던 성령 충만으로 일상과 현실 속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게 되고,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말을 하게 되고 글을 읽게 됩니다.

 

 

 

 

 

‘훈맹정음’이 있습니다. 박두성 선생께서 일제강점기 일본 점자를 배우던 조선 맹아들을 위해 1926년에 만들어낸 63개의 우리말 점자입니다. 제생원 맹아부 교사였던 박두성 선생님은 일본 점자를 배워야하는 조선 맹아들을 위해 밤마다 불을 끄고 아이들의 손으로 읽을 수 있는 우리말 점자를 만들어냈습니다. 여섯 개의 점으로 된 점자를 만든 브라유(Louis Braille, 1809-1852)는 자신이 맹인이었습니다만, 박두성 선생님은 맹인이 아니었습니다. 점자는 자신의 언어가 아니었습니다. 박두성 선생께서 맹아들을 만났던 교실과 불을 끄고 우리말 점자를 만들던 집에 성령께서 임하셨던 겁니다. 일상의 현장에 성령께서 임하셨고, 박두성 선생님은 이전에 몰랐던 맹인의 언어를 익히게 됩니다.

 

우리말을 당당하게 배우기 어렵던 엄혹한 때에, 박두성 선생님은 일제 총독부에 편지를 보냅니다. “우리 아이들은 이중의 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다른 나라 글을 배워야 합니다.” 일제 총독부에 조선말을 공식 언어로 쓰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제 정신으로 보낼 수 있는 편지가 아니지요.

 

성령 충만은 우리가 일상을 사는 현장에서 일어납니다. 일상의 현장에서 자기 한계를 넘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술에 취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을 맨 정신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행2:13) 하나님께서 성령을 내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소소한 만남 중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또 거대한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구요. 작든, 크든 우리네 일상 속에는 늘 소통의 문제가 있습니다.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소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사람에게 ‘말’을 주십니다.

 

성령께서 임하면, 어린 아이들에게도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임하면, 눈빛과 몸짓으로도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임하면, 부조리 속에서도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임하면, 외국에서 온 이주민들과 ‘하나님의 큰 일’을 상의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임하면, 발달장애인들에게도 ‘하나님의 큰 일’을 들을 수 있습니다. 말과 말이 다름 때문에 충돌하지 않고, 말이 없는 곳에서도 말이 통하게 되는 기적이 기도하여 성령 충만한 사람들에게 일어납니다.

 

만민을 위하여 기도하는 집이 성전입니다.(막11:17) 나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이 땅에 사는 이주민들을 위해 기도하고, 보통 사람과 다른 특별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집이 성전입니다. 사길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억견이 있고, 모든 사람이 나그네이고, 모든 사람은 장애인이거나 장애인이 될 것입니다. 만민을 위해 기도한 것은 그래서 나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나를 위해 기도하는 우리 집이 성전입니다. 거기 우리 집으로 성령께서 ‘불의 혀’같이 임하십니다.

 

‘성령이여 임하사 우리의 영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소서’ 우리 집, 우리 일상으로, 성령이여 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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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영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4.19 제목 '나는 너다'는 황지우 시인의 표현을 빌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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