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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음 _ 행6:1~7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2.04.29|조회수139 목록 댓글 4

 

 

 

사도행전 6:1~7 내려놓음

 

 

 

구제를 위한 재정의 출입을 사도들이 맡고 있었습니다(행4:35). 재정의 출입을 관장하는 것은 때로 사람의 생사여부가 달린 고도의 영적 감수성이 요청되는 일이었습니다(행5:1~11). 재정을 관리하는 것은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거룩함을 관장하는 일입니다.

 

구제와 접대를 담당하는 ‘집사’를 세운 것은 사도들의 거룩한 권한을 위임한 것입니다. 집사는 잡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의 거룩함을 관장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집사는 잡일에 능한 단순 기술자가 아니라, 믿음과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입니다(행6:3,5). 사도들은 집사보다 더 지혜롭거나, 더 믿음이 좋거나, 더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사도와 집사는 모두 믿음과 지혜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역할과 은사가 다를 뿐입니다.

 

교회는 집사들에게 구제와 접대에 관한 권한을 위임해야합니다. 사도들이 재정출납까지 맡다보니 과부 중에 구제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생겼습니다(행6:1). 특정인이 권한과 일을 독점하면 과부하가 발생하게 되고, 과부하가 발생할 때 거룩한 공동체에 균열이 생깁니다. 목사를 사도라 할 수 없지만, 사도의 전통을 잇는 사람으로 보겠습니다. 교회는 목사에게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도록 요청해야합니다(행6:4). 목사가 구제하는 일과 접대하는 일에 개입하는 것은 월권입니다. 목사는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집중하여, ‘성령과 지혜와 믿음이 충만한 사람들’을 집사로 세워야 합니다. 교회 헌법에 의하면, 목사는 설교하는 장로입니다. 교회는 목사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설교하도록 요청해야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교회는 목사에게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집중하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목사는 말씀의 은사를 지닌 설교하는 장로로서, 행정과 재정에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개입하지 않아야 합니다. 집사들이 받은 은사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고(故)하용조 목사가 후배 목사에게 권면한 것 중 하나가 ‘자기 은사가 아닌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목사의 은사는 행정과 재정에 있지 않습니다. 목사가 행정과 재정에 개입하려할 때 교회는 거룩함을 잃어버리기 십상입니다.

 

목사는 집사들을 지배해서는 안 되고, 집사에게 충만하신 성령을 믿어야합니다. 내려놓아야 성령께서 일하십니다. 교회의 정치체제는 신본주의입니다. 신본주의는 목사의 단독자적 영감과 사역의 독점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신본주의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에게 의사결정 권한을 위임함으로 실현됩니다(행6:3). 하의상달(下意上達)의 민주주의를 실천해야 신본주의입니다.

 

내려놓으면 성령께서 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미덥지 않은 사람이라도 신뢰해야 합니다. 미덥지 않은 사람을 통해 성령께서 일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과 지혜와 성령이 충만하기를 기도하고 맡겨야 합니다. 제자들의 ‘성령충만’보다 예수님의 ‘내려놓음’이 앞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려놓으시고 하늘에 올라가셔서 앉아계시기 때문에(행1:9), 우리가 땅에서 성령 충만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내려놓아야, 우리가 성령충만합니다. 나를 내려놓아야, 우리가 성령충만한 사람으로 세워집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지배하시지 않았습니다. 그저 사랑하셨습니다.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요13:1). 사랑하시다가 일을 맡기시고는 홀연히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행1:8~9). 로마제국의 식민지가 된 땅은 혼미하건만,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셔서 앉아 계십니다(엡1:20). 예수님은 일을 내려놓으시고, 앉아 계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로마제국에 직접 개입하셔서 황제에게 고삐를 채워 그 고삐를 바투 잡으시고 문제를 해결하시면 좋겠는데, 그저 하늘에 앉아계십니다.

 

영국인들은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고 했지요. 예수님은 ‘제자들’을 ‘로마제국’과 바꾸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로마 제국’을 내려놓으시고 ‘제자들’을 세우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은 믿음과 지혜와 성령이 충만한 ‘제자들’에게 제국의 통치권을 위임하십니다. ‘제자들’에게 제국을 다스릴 고삐를 쥐어주십니다(행1:8). 예수님은 성령충만한 ‘제자들’을 통해 ‘제국’ 복판에 ‘천국’을 세우고자 하십니다(행6:7). 한낱 사람인 ‘제자들’에게 제국의 통치를 위임하십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제국’이 아니라, ‘제자들’이 제국을 다스릴만한 사람 되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제국’보다 위대합니다.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행2:4).

 

예수님께선 ‘로마제국’을 내려놓으신 채 ‘사도들’을 선택하시고, 사도들은 ‘집사’에게 거룩한 권한을 위임합니다. 사도와 집사는 역할과 은사가 다를 뿐, 그 위상은 같습니다. 집사가 권한을 위임받으니, 제국보다 큰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집니다(행6:7).

 

 

첨부파일 120429_민들레주보.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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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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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주기쁨 | 작성시간 12.04.30 예수님을 더욱 깊이 묵상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됨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입만 열면
    감사의 눈물만이 흐르게 한답니다 오늘도 목사님을 통해 주옥같은 말씀이 내 마음가운데로
    자리를 차지 하는군요 므흣
  • 답댓글 작성자김영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5.01 오늘이나 내일 사무실을 계약하려구요. 말씀을 연구하고 말씀대로 기도하고 말씀을 가르칠 수 있는 공간을 주시라 기도해주세요. 저 멀리에 계신 권사님의 격려가 늘 힘이 됩니다. ^*^
  • 작성자KIA-KIM | 작성시간 12.05.02 전에 알던 목사 한 분이 목회를 하시는데 장로에게 건축헌금을 위임해서 맡겨놓았다가 그 장로가 건축헌금을 가지고 어디론가 가셔서 개인적으로 잘 사용을 하셨답니다. 그 이후로 목회를 하시는데 성도를 의뢰하지 않으시는 습관이 생기셔서 본인이 모든 일에 관여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헌금이 개인의 처리에 따라서 좌지우지되는 일이 생기니 그런게지요.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참 어렵지만 예수님도 가룟인 유다에게 연보괘를 맏기셨던 것을 보면서 재물에 관하여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조금 깨닫게 됩니다. 돈이 참 중요한 시대입니다. 살리기도하고 죽이기도하고 죽이기도하니까요. 영을 살리는 일에 쓰여지기를
  • 답댓글 작성자김영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5.02 ^*^ 네에 맞아요. 그래서 한 명이 책임을 지면 위험하고 유혹도 있지요. 일곱 명을 세운 이유입니다. 섬세한 방법을 찾아야지요. 돈은,,, 참,,,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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