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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셨습니다.(행17:24) 그리고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6~28)
땅에, 하나님의 형상이 살아 활동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생육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은 그래서, 하나님처럼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베풉니다.(행17:25) 사람다움이란 하나님스러운 것입니다. 인간적이란 하나님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에, 하나님스러운게 무언지 하나님 같은 게 무언지 분별하기 어렵지요.
성경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합니다. 역사 속에 실재했던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추적하면 하나님스러운게 무언지 하나님 같은 게 무언지 알 수 있겠지요. 바울은 그래서 아테네 아레오바고 광장에서 ‘예수와 부활’을 전했습니다.(행17:18) 예수를 말함으로, 종교성이 풍부하고 동시에 인간의 육체를 숭앙하는 그리스 사람들에게, 육체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소개했습니다.
바울이 소개한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였습니다.(고전1:23)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역사적 사실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건,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거기에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가 그리스도, 즉 구원자라고 믿습니다. 그리스도라는 개념은, 당시 로마 황제를 위한 호칭이었습니다. 팍스 로마나 세계에서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 붙였던 위대한 호칭이었습니다. 군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연전연승했던 존엄한 황제 아우구스투스에게 붙였던 그리스도라는 호칭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에게 부여합니다.
144만원을 상담치료비로 입금했습니다. 심각한 우울증 때문에 전기치료까지 받아야했던 어느 주부를 위한 6개월 상담 치료비입니다. 적지 않은 돈입니다. 민들레교회가 주일 예배 중 한 달 내내 모으는 연보에 해당하는 액수입니다. 한 달 동안 모은 헌금을 교회 밖 환우를 위해 나누었습니다.
민들레교회가 살고자 한다면 남은 돈을 차곡차곡 모아야 합니다. 그러나 민들레교회는 죽고자 합니다. 우리가 죽고, 이웃을 살리고자 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골1:24) ‘십자가에 못 받힌 그리스도’의 몸이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는 살고자 애쓰지 않습니다. 민들레교회는 살고자 애쓰지 않고, 살리고자 힘씁니다.
부활을 믿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이유는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면, 예수의 몸인 교회도 부활할 것입니다.
교회로 모이는 이유입니다. 죽고자 하는 교회의 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교회의 죽음을 함께 죽고 교회의 부활을 함께 누리며, 구원받습니다. ‘내’가 살고자 모이지 않고, ‘너’를 살리고자 모인 교회에 복이 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천지의 주재(Lord)'이신 하나님이 ‘나’를 살리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