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_ 창1:2~4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5.08.23|조회수56 목록 댓글 0



1.


터널을 통과할 때가 있습니다. 도로 위를 자동차로 달릴 때, 산을 관통하는 터널도 지나고 지하로 뚫린 터널도 만납니다. 어둠을 지나야 목적지에 닿습니다.


유대인들도 흑암 속을 지날 때가 있었습니다. 기원전 587년 바빌로니아 느부갓네살 왕이 유대를 침략했고 성전을 무너뜨렸을 때입니다. 왕족과 귀족들은 포로고 잡혀가고, 백성들은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제방 공사에 동원된 유대인 노예의 일상은 고된 노동과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의 연속이었습니다. 깊은 흑암 속을 통과하며 바빌로니아에 끌려온 유대인들은 희망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시137:4)


바빌로니아 땅에서는 노래를 부르지 않기로 작정하고, 슬픔으로만 살아가는 노예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2~4) 흑암 중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십니다. 앞이 보이지 않아 걸음을 내딛을 수 없는 사람을 위해, 하나님은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거대한 산 속으로 뚫린 터널을 향해 속도를 줄이지 않고 들어갈 수 있는 이유는, 달리다보면 빛이 보일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땅 속으로 난 터널로 내리달릴 수 있는 이유는 빛이 비추는 곳으로 다시 올라오는 길이 나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니 빛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


성전엔 법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성전이 무너지자, 법궤를 모실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게 되었고, 이때부터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기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돌판에 새겨져 성전에 안치되어있던 말씀이, 사람들의 눈과 귀를 통해 생각과 마음에 새겨지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성전이 된 것입니다. 벽돌 건물로 언덕에 세워진 성전이 아니라, 여기저기 곳곳에 움직이는 성전이 세워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은 통해 ‘바퀴’달린 ‘생물’을 보여주시는데,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과 마음에 새긴 사람들이 바퀴달린 성전인 겁니다.(겔1:15~21) 바빌론에 끌려오기 전, 유다백성들은 성전을 빛으로 경험했습니다. 언덕 위의 신성한 빛이었던 성전이, 말씀을 품은 사람들이 자리한 모든 공간에서 빛을 비추게 된 겁니다.


“주의 빛과 진리를 보내셔서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거룩한 산 시온과 주가 계신 성전으로 나를 이끄소서”(시43:3)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 빠진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빛과 진리를 보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줄 모르지만, 기도하고 있습니다. 한숨으로 기도하고, 탄식으로 기도하고, 눈물 흘림으로 기도하고, 부르짖으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알지 못하는 중에 빛과 진리를 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 빠진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빛을 구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셨던 겁니다. “빛이 있으라” 성전은 무너졌지만, 법궤를 마음 생각에 새긴 사람들이 성전이 되었습니다. 사람 한 명 한 명이 언덕 위에 세워진 움직이는 성전으로 빛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마5:14~15) 표현이 다를 뿐, ‘빛이 있으라’는 말씀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한 가지 말씀입니다. 성전이 된 사람에겐 슴배어 있던 빛이 뿜어지기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빛’이 무엇인지 예수님께서 풀어내셨던 겁니다. 우리가 빛입니다. 흑암 중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빛입니다. 우리는 빛이 될 사람이 아니라, 지금 빛입니다. 조도가 낮을지언정, 분명 빛입니다. 조도가 낮아도, 흑암 중 빛은 또렷하고 아름답습니다. 반디처럼.    


그런데, 우리기 빛인 줄 잘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빛이라 부르셨는데, 우리는 빛이라는 자의식이 없습니다. 빛들 속에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환한 대낮에 가로등이 켜져 있다면 가로등이 켜져 있는지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요즘 나온 자동차를 타고 낮에 운전을 하면, 일반도로에서는 헤드라이트가 들어오지 않다가, 터널로 진입하면 자동으로 헤드라이트가 켜집니다. 빛은 어두움 속으로 들어갈 때에 켜지는 겁니다. 백주대낮에 태양빛이 세상을 덮고 있을 때엔 북두칠성도 빛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가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터널 속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이라면, 우리가 있어야할 자리는 깜깜한 터널이거나 캄캄한 밤하늘인 겁니다. 빛은 흑암 속에서 비로소 빛입니다.


북두칠성은 밤하늘에 있기 때문에 영예롭습니다.


첨부파일 150823_민들레주보.hwp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