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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를 사랑하라 _ 사21:14~15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5.09.06|조회수137 목록 댓글 0

 

“주민들아 목말라 헤매는 자들에게 물을 가져다 주어라. 피난민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어라. 그들은 긴 칼, 날선 칼을 피하여 화살이 쏟아지는 위험한 싸움터에서 빠져나온 자들이다.”(이사야21:14~15)


‘긴 칼 날선 칼을 피하여 화살이 쏟아지는 위험한 싸움터에서 빠져나’와 김포에 들어온 난민이 있습니다. 줌머인입니다. 우리 법에 의하면 난민을 ‘공포로 인하여...입국하기 전 거주한 국가로 돌아갈 수 없’는 외국인이라 규정합니다.(난민법2조1항)


‘공포로 인하여’ 난민이 된 줌머인들은 영국의 식민 지배가 끝나면서 방글라데시와 미얀마 사이에 국경이 그어진 이후, 자치를 원하며 저항해 왔습니다. 그러나 소수민족연합체인 줌머인들은 충분한 자치를 보장받지 못했고, 방글라데시 당국의 인종 청소 정책 때문에 더 이상 고향에 살 수 없어 프랑스, 캐나다, 미국 등으로 흩어졌습니다. 그 중 김포에 들어온 줌머인은 2015년 7월 기준으로 99명에 이릅니다.


김포시 의회는 줌머인들을 위해 지난 7월 10일 ‘김포시난민지원조례’를 제정하였습니다. 환영할 일입니다. 그러나, 김포한강신도시 주민 일부가 예산낭비와 범죄율 증가, 집값 하락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고 합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포시에 거주하는 줌머인 99명 중 20세 이상 경제활동 가능 인구는 69명입니다. 69명 중 남자는 56명이고, 56명 전원이 직장을 갖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 대다수가 컨테이너 천막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줌머인이 없으면 김포시 천막 컨테이너 회사는 가동이 어렵다’고까지 말하기도 합니다. 줌머인들은 경제활동을 하면서 성실하게 세금을 내는 시민들입니다.


줌머인 여성 중엔 어린이집에서 다문화교육을 하기도 했고, 다수의 줌머인들이 고용노동부에서 통역 요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줌머인 로넬씨는 연세대, 한신대, 한양대, 고려대, 평택대 등에서 난민현황과 방글라데시의 사회와 문화 등에 관해 특강을 하기도 했습니다. 김포에 온 20년 새에 줌머인들은 다문화 인권 교육의 주체가 되어 어린이들부터 대학생들에게 살아있는 정보와 가치를 전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줌머인들은 김포에 거주하기 시작한 1994년 이래, 2015년 6월까지 20년 동안 범죄인 신분으로 검경의 조사를 받거나 기소된 적이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현재 김포시에 거주하는 난민들은 건실한 납세자들이며, 김포에 거주한 이래, 단 한 건의 형사 사건도 일으키지 않은 건전한 시민들입니다. 난민은 쓰레기 매립장처럼 더럽지도 않고 원자력발전소처럼 위험하지도 않습니다. 난민은 더럽고 위험한 혐오시설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난민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도, 물을 마시게 하고 떡으로 배부르게 해야 합니다만, 줌머인들은 경제활동을 하는 성실한 납세자들이요, 희소한 다문화 강사요, 대한민국의 법을 어느 내국인보다 존경하는 시민들입니다. 우리가 난민 지원을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1919년 삼일만세 운동이 시작되고 같은 해 4월에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됐습니다. 제헌헌법도 대한민국은 삼일만세운동의 열기에 힘입어 1919년에 건국됐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은 중국에 입국한 한국‘난민’들이었지요. 대한민국은 당시 일본제국에 저항했던 난민들이 주도하여 세운 나라였고, 우리는 난민들의 후예인 것입니다.


구약성경 신명기에는 이런 규정이 있습니다. “너희도 한때는 이집트 땅에서 떠돌이 신세였으니, 너희도 또한 떠도는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중국에서 ‘떠돌이 신세’였던 우리입니다. 난민이었던 우리 역사를 망각하는 것은 지금 김포에 거주하는 난민들에게 잔인하고, 우리 국체의 역사를 부정하는 민망한 노릇입니다.


지난 8월 24일 독일 정부는 5년 째 내전 중인 시리아 난민을 모두 받아들이기로 했답니다. 독일은 올해 상반기에만 4만4417명의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였습니다. 독일 시민들은 난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단정하지 않고, 집값이 떨어질 거라는 기우에 빠져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난민 때문이 아니라 난민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에 집값이 떨어질 수 있고, 편견 때문에 범죄자가 생겨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난민이 아니라, 선주민의 의식수준입니다.





시리아 내전을 피해, 터키에서 유럽으로 가는 배가 뒤집혀, 세 살 바기 에일란 쿠르디가 죽은 채 해변으로 쓸려왔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진을 보며, 가슴 먹먹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온 세계가 애도하고 있습니다단,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입니다. 살아있을 때 사랑해야지요. 죽은 아이를 애도하다가, 우리 자신을 위한 애도 의식이 끝나면, 또 난민을 둘러싼 끔찍한 현실은 마냥 지속될 것입니다. 애도와 장례는 사실,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의식 아닙니까? 죽은 이를 애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죽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인종청소를 피해 우리 동네 김포에 쓸려온 줌머인들은 우리 옆에 살아있습니다.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신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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