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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_ 사40:1~8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5.09.20|조회수113 목록 댓글 0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십일 동안 피어 있는 꽃이 없고(花無十日紅), 십년 동안 지속되는 권세가 없다지요(權不十年). 꽃이든, 권력이든 사람을 사로잡는 세상의 좋은 것들은 다 유한합니다. 거칠고 부담스러워도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합니다.


바빌로니아의 문명과, 제왕의 권세도 풀처럼 마르고 꽃처럼 시들 것입니다. 이사야는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불’면 풀이 마르고 꽃이 시든다 합니다. 여호와의 ‘기운’은 ‘숨’(the breath of the Lord)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숨이 닿으면 꽃도 권력도 시들어버립니다.


꽃처럼 매혹적이고, 권력같이 달큰한 것들은 하나님의 숨에 시들지만, 먼지처럼 더럽고 흙같이 거친 것들에 하나님의 숨이 닿으면 ‘생령’이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2:7) ‘생기’(the breath of Life)라고 번역되기도 하고, ‘기운’이라 번역되기도 하는 하나님의 ‘숨’은 문명과 권력을 시들게 하지만, 먼지뭉치나 흙덩어리를 살아나게 합니다. 하나님의 숨이 닿을 때, 심판이 행해지기도 하고 창조가 일어나기도 하는 겁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의 숨을 심판으로 경험하지만, 어떤 이는 하나님의 숨을 창조로 경험합니다. 제국의 통치자는 하나님의 숨을 심판으로 경험하나, 제국의 노예는 하나님의 숨을 해방으로 경험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호흡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숨 쉬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그 기운이 세상을 덮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운이 세상 위에 불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권력자들은 시들어 갈 것이요 권력의 발치 아래 밟히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흠모하는 인생들은 ‘생령’이 될 것입니다.





지난 목요일, 세월호 희생자의 어머니들을 만났습니다. 간담회를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듣고 나오는데 절망만 밀려옵니다. 사고나 일어난 후에,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는 상황 때문입니다. 아직도 왜 세월호가 침몰했는지 원인을 모릅니다. 날마다 일어나는 크고 작은 교통사고에도 원인이 있기 마련인데, 476명이 타고 있던 배에서 304명이 죽거나 실종됐는데 사고의 원인을 모릅니다. 국가 권력은 거짓말만 되풀이 합니다. 심지어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이 국가 경제를 망치고 있다고까지 합니다.


현실은 절망으로 가득합니다. 바빌로니아에 끌려온 유대 노예들의 현실도 절망뿐이었습니다. 절망적인 현실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딱 한가지입니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제 ‘노역의 때’가 끝났으니, 광야를 관통하는 길을 가라 하십니다.(사40:2) 바빌로니아의 신전은 거대하고, 신상은 우뚝하지만, 보이는 것들은 다 허상입니다. 거대한 허상들은 풀이 마르고 꽃이 시들듯 여호와의 기운에 무너질 것입니다. 그 허상의 그늘에서 벗어나 ‘노역의 때’를 끝내고, 길을 나설 때에 절망이 끝나고 소망이 시작됩 니다.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사40:3)


옛날, 바빌론 제국의 문명과 권세를 시들게 했던 ‘여호와의 기운’이 여기 악한 정부와 권력을 시들게 하소서. 한 줌의 흙덩이 취급 받으면서 끝을 알 수 없는 길 가는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가족·실종자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생기가 닿게 하소서. 흙덩이라도 생령으로 창조되게 하소서.


고통의 크기는 분명 다릅니다만, 부정한 권력의 그늘 아래에서 살아가는 민초들의 일상은 버려진 흙덩이처럼 초라하고 비참합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거기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노역의 때’가 끝났다 하시는데도 길 가기를 주저합니다. 바빌로니아 신전의 그늘을 벗어나는 순간, 광야에 내리쬐는 폭염을 감당할 수 없다고 지레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정말이지 큰 일이 터지기 전에는 ‘고기 가마’(출16:3)곁을 떠날 생각을 하기 어렵습니다. 무슨 일이 기다릴 지 알 수 없는 광야보다, 운하 공사장에서 사고를 당하고 등에 채찍을 맞을지언정 익숙한 일상을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자유도 좋고, 새 하늘 새 땅도 좋지만, 그것보다 사람들은 익숙한 일상을 더 좋아합니다.


쌓여있는 먼지가 되어 행여 흩어지고 날아갈까 숨도 쉬지 않는 민초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40:31~32) 길에서 먼지는 생령이 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기운’에 저 문명과 권력은 풀꽃같이 마르고 시들겠지만, 길을 가며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여호와의 기운을 받아 ‘새 힘’을 얻습니다.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가듯 달리고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서 「숨」을 내쉬며(breathed on them)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요20:21)


숨, 쉬셨습니까?


길,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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