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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바라나 없고 구원을 바라나 멀도다 _ 마15:1~20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5.10.11|조회수106 목록 댓글 0

 

수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금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일요일에 예배를 드립니다. 새벽에도 예배를 드리고, 아침과 저녁에 성서 묵상을 합니다. 아름답습니다. 매일 첫 시간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음으로 시작하는 것 아름다운 습관입니다. 정해진 날과 시간에 하나님을 거울 삼아 나를 비춰보고, 내 소원을 올리는 것 역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종교 생활을 통해 얻는 경건한 모습은 어떤 예술가의 작품보다 곱습니다.


이전 교회에서 부목사를 할 때 기억하는 아름다운 모습 중 하나가 풀 먹인 한복을 입고 예배당으로 올라오시는 은퇴 권사님의 웃음이요, 또 잘 다린 바지와 깨끗한 와이셔츠를 입고 예배당을 찾아오시던 은퇴 장로님의 악수하는 손이었습니다. 규칙적이고 깔끔하고 깨끗한 종교 생활을 저도 좋아합니다.


예수님 때에도 깨끗한 종교 관습이 있었습니다.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 것입니다. 기원과 시작은 알 수 없습니다만, 옛날 제사장이 깨끗하게 제사를 준비하던 모습을 일상 속에 들여온 것이지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씻어 깨끗해진 손으로만 만지겠다는 생각은 갸륵합니다. 익숙하고 정갈한 전통적인 종교 예식에 참여하며, 사람들은 구원받았다는 안정감을 갖습니다.


그러나, 이는 치명적이고 위험한 안정감입니다.




렘브란트, <설교하는 예수>, 1652



예수님은 ‘장로들의 전통’을 가르치며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선사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돌직구를 던집니다.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마15:2,14) 그리고 제자들과 따로 대화하시며, 전통을 강조하는 바리새인들을 ‘맹인’이라 폄하하십니다.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마15:14) 이렇게 예수님의 말법은 거침이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민초들에게 제법 존경받는 종교지도자였습니다. 오늘로 치면, 평범한 목사나 신부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맹인이라 규정한 바리새인들은 섹스스캔들을 일으킨 목사도 아니요, 공금 횡령을 한 목사도 아니요, 논문 표절을 한 목사도 아니요, 무난하게 교회를 이끌고 있는 목사들이라 하겠습니다. 모이기를 힘써 예배를 잘 드리고, 새벽 기도에 성실하게 참여하고, 성경을 꾸준히 읽으며, 식사 전에 꼬박꼬박 기도할 줄 아는 신실한 신앙인들의 모범이 되는 목사들입니다.


그들을 향하여, 맹인이라 일갈하십니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고 있다고 개탄하십니다. 밥 먹기 전에 손 씻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게 무슨 대단한 잘못이라고,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맹인이라고 까지 깎아내리실까요.


이사야가 생각납니다. “우리가 맹인같이 담을 더듬으며 눈 없는 자 같이 두루 더듬으며 낮에도 황혼 때 같이 넘어지니 우리는 강장한 자 중에서도 죽은 자 같은지라”(사59:10) 이사야는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실하게 판결하는 자도 없으며 허망한 것을 의뢰하며 거짓을 말하’는 세대를 향하여, 맹인 같다고 합니다.(사59:4) 법을 만들고, 법을 집행하고, 법을 판결하는 기관들이 타락할 때 세상은 빛을 잃어버립니다. 정의와 공의가 시행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맹인이 됩니다.


지금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법 기관이 다른 권력 기관의 눈치를 보고, 악법은 존치하고 의로운 법은 제정하지 않으며, 있는 법이나마 성실하게 집행하지 않습니다. 이런 때에 각종 ‘장로들의 전통’을 따르는 것만으로 종교적 안정감을 확보하려 한다면, 그 안정감이란 치명적으로 위험한 것입니다. 세상이 빛을 잃었는데 우리만 안정감을 유지한다면, 이건 마약에 취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 세상에 가득하고 내 영혼에 스며들어있는데, 씻은 손으로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나는 깨끗하다고 가르치는 바리새인들은 ‘거짓 평안’을 선포하는 악한 교사인 겁니다.(마15:19)


종교적 관습이나 전통을 지키는 것보다, 정의와 공의를 세상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 참 신앙입니다. 십시일반하여 가난한 이를 도울 때에야 식사 기도가 참되고, 불의에 저항하고 악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런 나눔과 연대 속에, 혹 죽음이 위협한대도 굴하지 않는 것이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종교적 안정감에 젖어 있는 맹인되지 말라 하십니다.


대신 빛이 되라 하십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사6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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