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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기다렸더니 _ 행6:8~7:8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2.05.14|조회수73 목록 댓글 0

 

 

사도행전 6:8~7:8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메소포타미아는 4대 문명 발상지 중 하나입니다. 다른 세 개의 문명은 나일 강, 황하, 인더스 강 등 각각 한 개의 강을 끼고 있는데,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두 개의 강을 끼고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는 문명 중의 문명입니다.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도시 문명을 아는 사람입니다. 도시는 그 자체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곳입니다. 고대 도시는 ‘성(城)’안에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성 안에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성벽의 보호를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벽의 보호를 받는 도시를 최초로 세운 사람은 바로 ‘가인’입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인 후, 사람들이 자신을 죽일까 무서웠습니다(창4:14). 하나님은 존속살인자 가인마저 보호하시겠다고 선언하셨지만 가인은 하나님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창4:15). 하나님께서 아벨을 지켜주시지 않았다고 판단했을까요. 가인은 하나님의 보호를 신뢰하지 않고, 성을 쌓아 성벽의 보호를 받고자 합니다(창4:17). 이것이 도시문명의 기원입니다. 인류의 문명은 살인자 가인이 하나님의 보호를 거부한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가인의 불신의 두께만큼 성벽은 두텁고, 가인의 거절의 높이만큼 성벽은 높습니다. 두텁고 높은 성벽은 제법 의지할만합니다.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라는 두텁고 높은 성벽의 보호를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벨의 피가 호소하는 소리를 듣지 않는다면, 문명은 매력적입니다. 메소포타미아에 사는 아브라함에겐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아벨의 피는 땅에 스며들었고, 그나마 희미한 핏자국은 포도(鋪道)로 덮였습니다. 그런데.

 

아무 문제가 없던 아브라함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개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12:1)”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땅으로 가라’하시고는, ‘발 붙일 만한 땅’도 주시지 않았습니다(행7:5). 아브라함은 ‘영광의 하나님’을 만난 이후, 평생 길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영광의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메소포타미아 땅에 살았지만 ‘영광의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는 메소포타미아를 떠나야합니다(행7:3). 인생 여정 중, ‘영광의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영광의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땅에 살지만, 만난 후에는 길에 삽니다.

 

설상가상,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것은 400년 동안 후손들이 노예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행7:6). 한 세대를 30년으로 본다면, 400년은 13대에 이르는 긴 시간입니다. 메소포타미아에 살던 아브라함은 ‘영광의 하나님’을 만난 후에 평생을 길에서 살아야 했고, 13대손까지 노예가 되어야 했습니다. ‘영광의 하나님’을 만나야할까요?

 

한 사람의 100년도 13대에 이르는 400년도 소멸합니다. 소멸하는 것에 울고 웃는 것이 인생입니다. 우는 자가 불쌍한 것은 우는 것 자체가 불쌍한 것이 아니라, 소멸하는 것 때문에 울기 때문에 불쌍합니다. 웃는 자가 불쌍한 것도 웃게 하는 그것이 소멸하는 줄 모르고 웃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무한한 영원에 관한 것입니다. 영원을 알고 누린다면, 소멸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영원을 믿는다면 길에서도 안식할 수 있습니다. 이국에서 노예가 되어도 안식할 수 있습니다. 안식은 공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시간에 관한 것입니다. 비틀어진 공간일지라도 안식이라는 시간이 녹아든다면 거기도 천국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창15:6).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롬4:3).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길에서 천국을 삽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은 애굽에서 천국을 삽니다. 아브라함은 행위로 의를 얻은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롬4:2). 아브라함은 400년이 지나고 나서, 후손들에게 ‘땅’을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믿음은 기다림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믿음은 아브라함처럼 죽어서도 기다리는 것입니다. 죽어서도 기다릴 수 있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죽음 너머, 내가 누리지 못할 땅을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시40:1)” 기다리고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성벽 없는 길에서도 하나님의 보호를 믿어 안식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처럼 믿어야 구원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 400년이라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죽어서도 믿어야 구원받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길 가운데 성벽이 되실 것을 믿습니다. 노예가 된다 해도 파라오의 통치는 명목상일 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실재 주권자이심을 믿습니다.

 

마침내 땅마저 주의 나라가 될 것을 믿습니다(마6:10).

 

 

 

첨부파일 120513_민들레주보.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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