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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입니까? _ 단4:1~37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5.11.29|조회수147 목록 댓글 0

 제국을 세운 느부갓네살에게, 경쟁자는 없습니다. 주변은 물론이거니와 이집트의 파라오까지 느부갓네살에게 제압됐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땅의 중앙에 한 나무’가 되어 ‘땅 끝’에서도 보일만큼 우뚝한 나무가 되었습니다.(단4:10)


패권을 차지한 느부갓네살 왕은, 거의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人間)이란, 사람(人) 사이(間)라는 뜻이지요. 느부갓네살은 사람 사이에 있지 않고, 사람 위에 있습니다. 신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사람 사이에 있지 않고, ‘땅 끝’에서도 보일만큼 높은 자리를 차지한 신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인간이 아니라 신의 자리를 탐하는 것, 이것이 교만입니다. 타고난 ‘총명’이 있으되, 하나님을 제쳐두고 스스로 인생의 지배자가 되는 것이 ‘교만’입니다.



Nebuchadnezzar, by William Blake, depicting the king during his bout of insanity



하나님께선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낮추십니다.(단4:37) 교만은 그래서 패망의 선봉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


제국의 왕이라도 ‘교만하게 행하는 자’는 심판받습니다. ‘땅 끝’에서도 보이던 큰 나무가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의 명령으로 베어집니다. “그가 소리 질러 이처럼 이르기를 그 나무를 베고 그 가지를 자르고 그 잎사귀를 떨고 그 열매를 헤치고 짐승들을 그 아래에서 떠나게 하고 새들을 그 가지에서 쫓아내라”(단4:14)


교만한 권력은 무너질 것입니다. 교만하고 악한 권력은 역사 속에 반복되고 지금도 여전하지만, 무너집니다. 다니엘은 당시 제왕의 권력을 갖고 있는 느부갓네살에게 권력의 붕괴를 예언합니다.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단4:25~26)


예언자는 단순히 앞날을 미리 보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교만한 왕이 불쾌해하는 진실, 역사를 관통하는 진실을 교만한 자로 하여금 직면케 하는 사람입니다. 예언자는 제국의 왕 앞에서라도 신탁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태지도 덜지도 않고, 번민 중에 선포합니다. 예언자는 자기 신상에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을 계산하지 않고, 누구 앞에서라도 신탁의 내용을 검열하지 않습니다. ‘번민’하나 타협하진 않습니다.(단4:19)


타협하지 않고,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에게 회개를 촉구합니다. “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단4:27)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에게 용서받을 길은, 공의를 행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회개란 단순히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실천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도 회개하라고 선포할 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했지요.(눅3:8) 회개에 합당한 열매란 구체적 행동과 실천입니다.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눅3:11) 세리들에겐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고, 군인들에겐 강탈하지 말고 거짓 고발하지 말고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고 했습니다.(눅3:12~14) 삭개오도 예수님을 만나 구체적 행동과 실천으로 회개했습니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눅19:8)


다니엘, 세례요한은 왕과 왕의 권력을 유지하는 군대와 세금 제도에 관하여 하나님의 뜻을 선포했던 예언자들입니다. 예수께서도 역시, 당시의 정치권력과 정치권력에 유착된 종교권력을 향하여 회개를 선포하시다가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께서는 부활했지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로마의 정치권력과 예루살렘의 종교권력은 무너졌습니다. 느부갓네살의 권력도 아들 나보니두스를 끝으로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회개하면 ‘장구’할 것이라 다니엘이 설득했으나, 느부갓네살에게 정의와 사랑은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나 봅니다.(단4:27) 느부갓네살은 끝내 인간이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사람은 인간(人間)이어야 합니다.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 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인간이 아니라, 신의 자리를 탐하는 것, 이것이 패망의 시작입니다. 신의 자리를 탐하는 인간은 패망하고 넘어지지만,


인간(人間)은 죽어도 죽지 않습니다. 가난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人) 사이(間)에 계셨던 예수님, 그렇게 참 인간이 되셨던 예수님은 죽어도 죽지 않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계셨던 인간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나는 인간의 부활을 믿습니다.


나는, 인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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