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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 _ 약1:1~12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6.01.24|조회수148 목록 댓글 0

1981년인가 봅니다. 유치원 졸업할 때, 연극을 했습니다. 여름부터 연습을 하기 시작했는데, 다른 친구들 대본은 한 장뿐인데, 저만 대본이 석장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어 속상했습니다. 동생들도 잘 돌보고 점심시간에 주기도문을 외울 줄 아는 유일한 원생이었는데, 선생님들께 몹시 야속했습니다.


유치원을 가지 않았습니다. 일곱 살짜리 영준이가 선생님들의 부당한 요구(?)에 수업 거부(!)를 선언한 거지요. 햇빛 환한 날, 수업을 거부한 영준이네 집에 선생님이 환하게 웃으며 찾아오셨지만 영준이는 선생님과의 면담을 거부했고, 선생님과 어머니가 웃으면서 대화하시는 걸 햇빛을 받으며 보고만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가시고 나서 대본 석장의 의미를 이해했고, 열심히 대본 연습을 하고 연극의 주인공 노릇을 했습니다. 석장짜리 대본은 부당한 요구가 아니라, 영준이를 향한 선생님의 신뢰였습니다. 적어도 시험의 의미에 관해 저는 유치원에서 제대로 배웠지 싶습니다. 로버트 풀검(Robert Fulghum)의 말을 기억합니다. “내가 정말 알아야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풀기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인생에 주어진 문제는 선다형도 단답형도 아닐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결 안 되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우선, 문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인내로 문제와 맞서야 합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


받아든 문제를 풀려면 ‘지혜’가 있어야 하지요. 지혜가 없으면 아무리 ‘인내’해도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지혜가 부족합니다. 문제를 해결할만한 충분한 지혜가 우리에겐 없습니다. 기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하나님은 사람에게 해답을 알려주시는 방식보다, 사람이 해답을 알아내는 방식을 선호하십니다. 해답을 알아낼 수 있도록 지혜를 주고자 하십니다.


이게 나한테 가당키나 한 일일까요? 내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적 지혜를 지닐만한 사람일까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약1:6~7) 하나님은 사람을 꾸짖지도 않으시고 후히 주시고자 하시는데, 사람은 이를 ‘의심’합니다.(약1:6) 갈팡질팡하며 ‘두 마음’을 품습니다.(약1:7)


‘의심’하고 ‘두 마음’을 품을 때, ‘혀’가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문제에 빠진 처지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자신의 능력을 ‘저주’하기도 합니다.(약3:9) ‘의심’과 ‘두 마음’이 ‘혀’를 통해 ‘저주’로 표현될 때 지옥문이 열립니다. 인생이 지옥 불에 파괴됩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약3:6)


의심하지 않고,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저주하지 않고, 지혜를 구하며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십니다. 나락에 떨어지는 것 같은 심각한 문제를 맞이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마침내 높이십니다.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는 사람 되게 하셔서 마침내 높이십니다.(약1:4) 그래서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약1:9)


알튀세르가 이런 말을 했답니다. “산 위의 토끼는 자신이 초원에 사는 코끼리보다 크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처지가 역량을 결정짓지 않는단 말이지요.



King Henry III's elephant and its keeper, drawn by Matthew Paris, 1255.



저는 거꾸로도 말하고 싶습니다. 코끼리가 잊지 말아야할 것은 자신이 비록 낮은 곳에 있다 해도 높은 산에 있는 토끼보다 결코 작지 않다는 것. 낮은 곳에 있다 해서 작은 건 아닙니다. 집 평수가 작다 해서, 연봉이 적고 통장 잔고의 숫자가 작다 해서, 사람이 작은 건 아닙니다.


신영복 선생이 소개하는 공자 이야기입니다. 제자들과 함께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를 지나고 있을 때 며칠을 굶주려 일어날 기력도 없는데, 공자가 조용히 가야금을 켰답니다. 가야금을 켜고 있는 공자에게 제자 자로가 화를 내니까, 공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군자는 원래 가난한 법이고 소인은 가난하면 흐트러진다(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 공자의 말을 들은 제자들이 가야금에 맞춰 함께 춤을 추었답니다. 며칠을 굶은 공자와 제자들이 가야금을 켜고 춤을 춥니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시150:5~6)


우리에게 풀지 못할 문제와 가난이 있지만, 흐트러지지 않고 ‘군자’답게 찬양합니다.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난제는 사실 모두에게 있습니다. 야고보의 편지는 온 세상에 흩어져있는 디아스포아 유대인들 모두를 대상으로 합니다.(약1:1) 호흡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문제가 놓여 있습니다. 소인(小人)은 문제 앞에 흐트러지고 때로 자신과 타인을 함께 저주하지만,(약3:9)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는 군자는 고요히 가야금을 켜고 노래합니다. 호흡이 있으니 노래합니다.


물이 마르고 낮은 데 사는 코끼리가 잊지 말아야할 것. 산에 있는 토끼보다 코끼리는 결코 작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품을 만큼 큰 사람, 군자입니다. 인생이 낮고 가난한 이유는 신적 지혜를 지닌 군자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여, 찬양합니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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