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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맞는 비 _ 눅8:40~56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6.01.31|조회수212 목록 댓글 0

법이 있었습니다. 유출병(a bodily discharge)을 앓고 있는 사람과는 접촉하지 말라는 법이 있었습니다. “그의 몸에 유출병이 있으면...부정한 자라...유출병이 있는 자의 몸에 접촉한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레15:2~7)


유출병은 고름이나 분비물이 멈추지 않는 병입니다. 피가 멈추지 않는 부인병인 혈루병도 유출병의 일종입니다. 혈루병이 있는 사람의 ‘침상’도 ‘옷’도 ‘그릇’도 부정한 것이라 여겼습니다. 심지어 ‘앉았던 자리’마저 부정하다 했습니다.(레15:20) 사람들은 혈루병 앓는 사람을 만나기 꺼려했을 것입니다. 혈루병자는 격리되어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12년 동안 혈루병 앓던 여인이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몰래 나왔습니다. 사실상 법을 어긴 것입니다. 아니 법에 저항한 것입니다. 병이 있기 때문에 세상과 접촉할 수 없다는 건, 여자에게 너무 가혹한 법이었습니다. 혈루병자와 접촉해도 물로 씻으면 다시 깨끗해지는 줄 알면서도,(레15:7) 혈루병자를 1급 전염병 환자 대하듯 하는 관습법은 여자에게 악법이었습니다. 여자는 악법에 저항합니다. 여자에게 악법은 법이 아닙니다.


12년 동안 지속된 하혈은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것이지요. 법과 관습, 고통과 부끄러움을 깨고 나서기란 보통일이 아닙니다. 여자가 몰래 무리 속으로 들어옵니다. 발각된다면 여자는 다시 격리 될 것입니다. 몰래 무리 속으로 들어온 죄를 물어 감시자가 붙을 지도 모릅니다. 여자에게 집은 감옥이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여자를 보았습니다. 여자의 흔들리는 눈빛을 읽었습니다. 무리 속에 있지만 무리 속에 숨어있는 여자의 불안한 눈빛을 보았습니다. 여자도 예수의 눈빛을 읽었습니다. 괜찮다고 말하는 예수의 눈빛을 여자가 알았습니다. 여자는 자기도 모르게 예수의 ‘옷 가에 손을 대’었습니다.(눅8:44) 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혈루병자의 손에 닿는 모든 것이 부정해진다는 법이 있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괜찮다고 말하는 예수의 눈빛 때문에, 여자는 자기도 모르게 예수의 옷 가에 손을 대고 말았습니다. 큰일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여자를 보시고, 여자의 손에 자기 옷이 닿았다고 고백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무리가 밀려들어 미나이다”(눅8:45) 이 말씀은 질문이 아니라 고백입니다. 내 옷에 혈루병 앓은 여자의 손이 닿았으니 나도 부정한 사람이 되었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스스로 부정한 사람이 되었다고 고백하는 순간 예수에게 ‘밀려들어’ 접촉했던 모든 사람도 부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의 고백으로, 모든 사람이 함께 부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난처한 상황입니다.


이 난처한 상황에 예수께서 여자를 칭찬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눅8:48) 예수께서 여자를 칭찬하시니, 무리 중 누구도 여자를 추궁하거나 배척할 수 없습니다. 여자를 격리시킬 생각은 아예 할 수도 없습니다. 큰 무리가 서로 밀고 밀리면서 혈루병 앓은 여자와 직간접 접촉했음에도, 무리 중 누구도 스스로를 부정한 사람이라 여기지 않습니다. 예수도 부정한 사람이 되고, 사람들도 다 부정한 사람이 돼 버렸기 때문입니다. 함께 부정한 사람이 돼버렸기 때문에, 여자는 더 이상 특별격리조치 돼야하는 부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렇게 여자는 구원받았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 우산이 하나일 때가 있습니다. 사람은 둘인데 우산이 하나일 때가 있습니다. 우산을 함께 써야지요. 함께 우산을 쓰면, 내 어깨도 젖습니다. 우산이 하나인데, 사람이 여럿일 때도 있겠지요. 우산 하나만큼만 비를 피할 수 있는데 둘도 아니고 셋도 아니고 뭇 사람들이 비를 맞고 있다면, 우산을 접어야 합니다. 다 함께 비 맞는 자리에 서 있을 때, 비는 피해야 할 것이라기보다 축복입니다. 다함께 비를 맞으며 하나가 되는 은혜가 하늘에서 내립니다.(계22:21)


예수님은 기꺼이 함께 비를 맞습니다. 12년 동안 혈루병 앓는 여자와 함께 부정한 사람이 되십니다. 또, 열 두살 아이의 시체를 만지십니다. “예수께서 그 죽은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된 아이야 일어나라”(눅8:54) ‘시체를 만진 자’도 부정해진다는 법이 있음에도,(민19:11) 개의치 않고 예수께서는 죽은 아이의 손을 잡습니다. 예수는 기꺼이 부정한 사람이 되십니다. 함께 비를 맞습니다. 그 순간이 구원의 순간입니다. 죽은 아이가 살아납니다.


‘함께 맞는 비’는 나도 젖게 하는 비가 아니라, 모두를 살리는 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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