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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간 열쇠 _ 눅12:13~40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6.02.21|조회수405 목록 댓글 0

유산 상속을 받지 못한 사람의 억울한 이야기를 듣고 난 예수님께서 자신은 상속법 전문가가 아니니까 딴 데 가서 이야기하라 하십니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눅12:14) 여기서 멈추는 게 아니라, 우는 아이 뺨치듯 정신 번쩍 드는 말씀을 더하십니다.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12:15) 상속을 독점한 사람뿐만 아니라, 상속을 받지 못한 사람에게도 탐심이 있다는 겁니다. 탐심 때문에 억울한 것이니, 다른 사람의 탐심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탐심을 다스리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유명했지만, 인기 있는 사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인기를 얻으려면 사람들의 욕망을 받아주어야 합니다. 적어도 욕망이 좌절되었을 때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욕망을 공격합니다. 욕망을 채우지 못하고 좌절한 사람을 책망합니다. 가혹할 만치, 욕망이라는 죄와 죄 된 본성에 직면케 합니다. 


분배의 정의에 대해 무심하신 게 아닙니다. 곳간이 클수록 영혼이 평안할 거라 착각하는 부자들의 어리석음에 대해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곡식을 쌓아 둘 곳이 없’는 부자를 ‘어리석은 자’라 깎아내리십니다.(눅12:17,20) 더 이상 쌓아둘 수 없을 만큼 가진 게 많은 부자의 적폐는 심각한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부자의 어리석은 판단을 심판하신다는 것이 예수님의 경제정의입니다.


동시에 예수님은 묻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정의로운가? 부자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에게도 탐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산을 분배받지 못한 것은 억울한 일임에 틀림없지만, 유산을 독점한 자나, 유산을 받지 못한 자나 ‘탐심’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부자만 탐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부자를 부러워하는 사람 또한 탐심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중심에 탐심이 똬리 틀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사람은 왜 탐심을 버리지 못할까요? ‘염려’하기 때문입니다.(눅12:25~26)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어서 염려하고, 부자는 돈을 잃을까봐 염려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고, 잘 먹고 잘 입는 부자는 지금 먹고 입는 걸 잃을까 염려합니다.


염려하는 이유는 믿음이 작기 때문입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눅12:28)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작고 돈에 대한 믿음은 크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염려합니다. 염려에 사로잡힌 사람은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처럼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합니다.(눅18:14) 염려와 탐심이 가시가 되어, 사람을 성장하지 못하게 하고 열매 맺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만, 가시를 걷어낼 수 있습니다.


믿음은 다른 사람의 배낭을 채워주는 것입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눅12:33) 믿음은 ‘소유를 팔아 구제’함으로 다른 사람의 배낭을 채워주는 것입니다. 소유가 작아질 때, 믿음은 커집니다. 소유가 작아질 때, 구원의 확률은 커집니다. 예수님께서 상속받지 못한 사람의 억울한 사정을 돌아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경제정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 속 가시를 걷어내어 그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길을 가는 자가 구원받습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십니다.(요14:6) 진리란 고정되거나 고착된 원리가 아니라 길처럼 열려있는 것이요, 생명처럼 움직이는 것입니다. 길도 진리도 생명도 동사입니다. 믿음은 배낭도 메지 않고 진리를 찾고 생명을 누리기 위해 길을 나서는 것입니다.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눅9:3~4)



샤갈, '출애굽'



재산에 집착하고 소유에 사로잡힌 사람은 길을 나설 수 없습니다. 생명이 있어 진리를 소유하고 길을 가는 사람은 곳간을 짓지 않습니다. 길에 곳간을 지을 순 없으니까요. 곳간을 지을 수 없는 길에 서 있는 자, 구름 기둥이 움직이면 또 길을 가는 자에게 구원이 있습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눅12:35) 옛날 출애굽할 때, 허리에 띠를 띠고 지팡이를 들고 식사하던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믿고 길을 나서는 사람에겐 바다 한 가운데로도 길이 열립니다.(출12:11;14:21)


곳간 열쇠를 포기해야 천국의 열쇠를 받습니다. 곳간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한 걸음도 길을 나설 수 없으니까요. 풍성한 곳간 열쇠는, 그래서 뜨거운 지옥 열쇠입니다.(눅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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