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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엔 친구가 있다 _ 눅16:1~9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6.03.20|조회수468 목록 댓글 1


렘브란트, '창녀들 속에 있는 탕자'



‘낭비하다’δια‐σκορπίζω라는 말 속에는 뿌리다σκορπίζω는 뜻이 함의되어 있습니다. 우리말 ‘낭비’에도 물결 浪자가 들어있지요. 물을 뿌리듯 돈을 쓰는 게 낭비浪費입니다.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둘째 아들이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했습니다.(눅15:13) 탕자는 허랑방탕하게 물을 뿌리듯 아버지에게 받은 재산을 낭비했습니다.


‘어떤 부자’가 ‘청지기’에게 재산을 맡겼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보고가 그 주인에게 올라왔습니다. 청지기는 어떻게 재산을 낭비했을까요? 청지기가 재산을 어떻게 낭비했는지는 주인의 경고를 받은 후,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경고를 받은 후, 청지기는 ‘지혜 있게’대처하여 주인에게 칭찬을 받는데,(눅16:8) 주인이 청지기를 칭찬한 이유는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그 빚을 줄여주었기 때문입니다.(눅16:5~7) 청지기는 임의로 원금에서 많게는 50%, 적게는 20%를 줄여주어,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에 손해를 끼쳤습니다. 주인의 재산에 손해를 끼쳤으니 이것이야말로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 것인데도, 주인은 청지기에게 ‘지혜’있게 일을 잘 처리했다고 칭찬합니다. 빚진 자의 채무비율을 낮춰주는 것, 그래서 채권자의 재산 규모가 줄어드는 것을 주인은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그러면 주인은 무엇을 ‘낭비’라고 여겼을까요?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쌓아둔 채로 지키고만 있었던 겁니다. 주인이 생각하기에 ‘소유를 낭비한다’는 것은 재산을 소유한 채 썩히는 것입니다. 재산을 그저 쌓아둔 채 썩게 두는 것이야말로 ‘소유를 낭비’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것이야말로 ‘소유를 낭비’하는 것입니다.(눅12:21) 주인이 생각하기에 ‘진실한 청지기’는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입니다.(눅12:42)


소유한 것을 어떻게든 잃지 않으려고 꼭 쥐고 있는 것이야말로 낭비입니다. 곳간에 쌓아둔 것은 결국 잃게 됩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마6:19) 그러므로 소유하는 것은 낭비하는 것입니다. 소유한 것들을 꼭 쥐고 있는 것은, 재산을 낭비한 탕자의 허랑방탕과 다르지 않습니다. 허랑방탕도 낭비요, 나누지 않고 지키고 소유하는 것도 낭비입니다.  낭비가 심해서는 부자가 될 수 없지요. 


소유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나눔이 큰 사람이 부자입니다. 재물을 나누면, 재물이 하늘에 쌓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0~21) 재물이 곳간에 쌓여 있으면 낭비하는 것이요, 재물을 사람에게 흘려보내면 천국을 위하 투자입니다. 돈을 사람에게 보내면, 돈은 밥이 되고, 집이 되고, 옷이 되고, 책이 됩니다. 사람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이 ‘헌금’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니까요.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을 위해 ‘헌금’을 집행하면, ‘불의의 재물’이라도 생명을 살리는 도구가 됩니다.(눅16:9) 


재물은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의로운 재물은 없습니다. 재물이란 잉여생산의 결과물인데, 잉여생산은 누군가의 결핍을 부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재산을 축적한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재산의 손실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경제활동이란 게, 전체적으로는 제로섬zero sum게임이지요. 대지주가 된다는 것은 소작인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 땅에서 부자 되는 것이 누군가의 복을 빼앗는 것 되기 십상입니다. 기술의 발전, 토지·자본·건물 등 생산수단의 사유화, 그리고 사유재산보호법 등으로 곳간에 쌓인 재물은 흘러가지 않고 높아만 갑니다. 높이 쌓여만 있는 재물은 ‘불의의 재물’입니다.(눅16:9)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하십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눅16:9) 불의의 재물이라도 배고픈 사람에게 밥이 되고, 벗은 사람에게 옷이 되고, 지붕 없는 사람에게 집이 되고, 공부 못한 사람에게 책이 될 수 있습니다. 불의의 재물이 쌓여 있으면 도둑을 만들지만, 흘러가면 친구를 만듭니다. 재물을 탐하는 도둑의 품성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도둑을 만드는 불의한 세상이 있습니다. 불의한 세상으로 ‘불의의 재물’이 흘러가면, 흘러간 만큼 정의로운 세상이 됩니다. 정의로운 세상엔 길손을 영접하는 친구가 많습니다.


오래된 친구가 100만원을 맡겨왔습니다. 발달장애인의 자립과 지역사회 통합을 지원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파파스윌’Pspa's Will을 세우는 출자금으로 흘려보냈습니다. 돈을 쌓아 둔 채 낭비하지 않겠습니다.


친구의 돈으로 또 친구를 사귀려고 합니다. 친구들이 나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할 것입니다.(눅16:9)


천국엔 친구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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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용감하게 명랑해 | 작성시간 16.03.2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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