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내다보기 _ 눅17:5~6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6.04.03|조회수362 목록 댓글 0

기도는 세상 너머를 내다보는 것입니다. 현실 속에 없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갖게 해 달라고 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무너진 일상을 복구해달라는 것이 기도입니다. 예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시 마시옵소서”(눅11:2~4)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라는 기도는 사람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여기지 않는 세상 너머를 내다보는 것입니다. 로마 황제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세상에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여기는 세상이 오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라는 기도는 날마다 먹을 것이 없는 세상 너머를 내다보는 것입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하루 벌이가 날마다 있는 건 아니어서 밥을 못 먹는 날이 있었거든요.


우리 죄를 사하여 달라는 기도는 감당할 수 없는 ‘빚’에 짓눌려 사는 세상 너머를 내다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라는 기도는 당시 사람들 대부분이 감당할 수 없는 빚으로 서로서로 엮여 있는 세상 너머를 내다보는 것입니다.


예수님 살던 당시 유대는 정치적으로 억압받고, 경제적으로 불안하고, 인심마저 사나웠을 겁니다. 정치적인 억압과 경제적인 불안과 인간 관계의 파괴로 ‘부패’된 세상 너머를 내다보는 것이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였습니다.


기도가 이루어질까요? 기도가 이루어질 거라는 믿음이 자꾸 흔들립니다. 기도하지만, 쉬 이루어지지 않을 거 같습니다. 후에 ‘사도’가 된 이들도 기도한 대로 이루어질 거라 쉬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믿음 없이 기도하는 자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눅17:5) 믿음이 커지면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계속 붙들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믿음이 더 커져, 믿음이 확신이 되어,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기도하면 기도가 이루어질 거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생각은 다르십니다. 믿음이 커져야 한다고 생각지 않으십니다. 그만하면 됐다고 하십니다. 지금만큼만 믿어도 충분하다고 하십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눅17:6) ‘겨자씨 한 알’만큼 밖에 되지 않는 믿음의 작음을 힐난하시면서, 동시에 그만큼은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시는 겁니다. ‘겨자씨 한 알’만큼의 믿음은 한심스러운 것이지만, ‘겨자씨 한 알’만큼이어도 충분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더 커지면 좋겠지만 ‘겨자씨 한 알’만큼이어도 충분합니다. ‘겨자씨 한 알’만큼의 믿음으로도 바다에 뽕나무를 심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문제는 바다에 나무를 심지 않는 겁니다. 문제는 기도한 것에 대한 건전한 이성이 작동하여 작은 믿음을 자책하며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한대로 실천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될 것을 기도했거든, 로마 황제의 권력에 저항해야 합니다.(마5:41)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했거든 내가 가진 도시락을 나누어야 합니다.(눅9:16) 빚을 탕감받길 기도했거든 빚진 사람의 부담을 덜어주어야 합니다.(눅16:6)



반고흐, 'Peach Trees in Blossom'



믿음으로 바다에 나무를 심는 것은, 옛날 노아처럼 인류를 멸망시킨 홍수가 지나간 자리에 ‘포도나무’를 심는 것입니다.(창9:20) 폐허 위에 다시 나무를 심는 것입니다. 폐허가 된 세상을 다시 일구며 창조하는 것입니다.(창1:9~10) 지금 페허가 된 세상 너머를 내다보는 것입니다. 나무를 심으며 숲을 내다보는 것입니다. 여기 ‘부패하여 포악함이 가득한 땅’너머,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 하신 세상을 내다보는 것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입니다.(창1:31)


바다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가득한 온갖 좌절과 낙담의 세상을 상징합니다. ‘바다’는 땅을 덮고 있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뭉쳐져 사람들을 짓누르는 압력을 상징합니다.(창1:2)


바다에 나무를 심는다는 게 뭘까요? 김병년 목사의 말을 인용합니다. “병든 아내를 일으킬 능력은 없어도 사랑할 능력은 내게 있고, 바다에 수장된 세월호 탑승자들을 구할 능력은 없어도 진실을 위해 싸울 의지는 우리에게 있다. 온 세상을 바꿀 능력은 없어도 정치인을 바꾸는 권한은 내게 있다”


숲을 만들 능력은 내게 없어도, 나무 한 그루를 심을 순 있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으로.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