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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_ 눅18:35~19:10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6.04.10|조회수426 목록 댓글 0

‘여리고’는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오래된 도시입니다. ‘여리고’는 옛날 출애굽 히브리인들이 요단강을 건넌 후, 처음 만난 벽이었습니다.(수6:1) ‘여리고’는 히브리인들의 군대 역량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습니다.(수6:3)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 넘을 수 없는 벽이 ‘여리고’였습니다.


예수께서 ‘여리고’를 통과하여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하십니다.(눅18:31,35)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먼저 여리고를 점령해야 했던 ‘여호수아’처럼, ‘여호수아’와 같은 뜻의 이름을 가진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전 ‘여리고’로 들어가십니다. 여리고를 점령하지 않고는 예루살렘에 입성할 수 없다고 판단하셨을까요.


예수께서 높다란 벽을 향해 걸어가시는데, 벽 앞에 주저앉아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맹인’이 벽 앞에 주저앉아 구걸하고 있습니다.(눅18:35) 막막한 벽 앞에 주저앉아 있던 거지 맹인과 예수의 문답입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눅19:41~42)


예수께서 벽을 지나 성 안으로 들어가시는데, 벽 안쪽에 갇혀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리장 삭개오입니다. 세리장은 유대 왕이 세금을 징발하기 위해 고용한, 고약한 마름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의 왕은 로마 황제에게 가장 많은 세금을 걷겠다 서약하고 통치권을 낙찰 받은 개였고, 세리장은 그 개의 이빨같은 존재였습니다. 열정적인 유대민족주의자들은 의사義士가 되어 개가 된 친로마 관리를 칼로 죽이기도 했습니다. 삭개오는 자칫 칼을 맞을까싶어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는 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세리장입니다.(눅19:2~3)



Joel Whitehead '삭개오'



그렇게 벽 안에 갇혀 있던 세리장과 예수의 대화입니다. “삭개오야...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삭개오가.. 주께 여짜오되..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을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19:5~9)


벽 앞에 주저앉아 있던 시각장애인이 시력을 갖고, 벽 안쪽에 갇혀있던 세리가 회개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아 구걸하던 거지가 눈을 뜨고, 악랄한 방법으로 백성들 고혈을 짜던 세리가 재산을 내놓습니다. 세리장 삭개오가 내놓은 재산 절반은 맹인 거지에게 흘러갔을 것입니다.(눅19:8;18:35) 벽을 넘을 수 없었던 거지와 벽에 갇혀 있던 부자 모두에게, 벽이 사라졌습니다. 예수께서는 거지와 부자 사이에 놓여있던 벽을 넘나드시며, 다시 그 벽을 무너뜨리십니다. 보이는 벽은 여전하지만, 무력화 된 것입니다. 


벽을 세우고자 하는 인간의 죄는 쉬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옛날 출애굽 히브리인들이 여리고성을 무너뜨렸지만,(수6:20) 여리고 성은 재건되었습니다.


재건의 과정이 끔찍합니다.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그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왕상16:34)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이 죽었는데, 히엘은 공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공사가 끝났을 때에 ‘막내 아들’마저 죽습니다. 히엘은 사탄의 체제 속을 살아가는 사람의 전형입니다. 죽을 줄 알지만, 멈추지 않습니다. 자식이 죽을 줄 알지만 벽을 쌓아 도시를 만드는 일을 어쩔 수 없이 계속합니다.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죄입니다.


이렇게 살인자 가인이 쌓은 벽과 가인의 후예들이 구축한 '지배체제'Domination System는 흥망성쇠를 반복하며 지속될 것입니다.(창4:17~24) 여리고가 무너졌지만 다시 세워졌던 것처럼, 견고한 벽으로 세워진 사탄의 체제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벽이 영구할 줄 알기 때문에 맹인 거지는 벽 앞에 주저앉아 있고, 로마 황제의 개와 그 이빨이 된 세리장은 기꺼이 벽 안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부자 세리장과 거지 맹인 사이에 놓인 높다란 벽은, 사람을 주저앉게도 하고 가두기도 하면서 사탄의 ‘지배체제’를 견고하게 할 것입니다. 벽은 무너지지 않을 성 싶습니다. 그런데.


삭개오가 재산 절반을 내놓음으로 벽에 금이 갑니다. 거지와 부자가 균등해지면서, 벽이 벽 역할을 못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도시 여리고의 벽을 문으로, 다시 디자인하신 겁니다.


부자 삭개오를 만나시기 전, 예수께서는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셨지요. 그러면서 동시에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을 하실 수 있’다고도 말씀하셨구요.(눅18:25~27) 군사력으로 무너뜨릴 수 없는 여리고의 벽을 하나님께서 무너뜨리셨던 것처럼,(수6:2,20) 예수께서는 거지를 눈 뜨게 하고, 세리의 친구가 되심으로 다시 여리고의 벽을 무너뜨리시고, 거지뿐만 아니라 부자도 구원을 받게 하십니다.


로마 황제가 디자인한 사탄의 체제는 여전하지만, 거지 맹인과 부자 세리장 사이엔 예수께서 디자인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진 것입니다. 벽은 여전하나, 벽이 문으로 바뀐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 사이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 ‘하나님의 나라’는 높다란 여리고의 벽 이편과 저편 사이에, 거지 맹인과 부자 세리장 사이에 있습니다. 벽을 사이에 둔 부자와 거지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넘을 수 없는 벽도 없고, 풀려나지 못할 벽도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벽은 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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