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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이 될까, 십자가를 질까 _ 딤전1:5~17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6.05.08|조회수198 목록 댓글 4

바울은 자기를 ‘사도’άπόστολος라 칭합니다.(딤전1:1) 사도는 보냄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한편 바울은 스스로를 ‘괴수’the worst sinner라고 깎아내립니다.(딤전1:15) 바울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도이면서 동시에 ‘죄인 중에 괴수’라고 자기를 소개합니다. 사도와 괴수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이름이 모두 바울의 것입니다. 바울은 사도일까요, 괴수일까요.


렘브란트, '스데반에게 돌을 던지다'



바울은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인 이유를 과거에서 찾습니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딤전1:13) 바울은 자신을 ‘비방자’요 ‘박해자’, 또 ‘폭행자’였다고 폄하할만한 사건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일 때 그 배후이기도 했습니다.(행7:60~8:1) 바울은 ‘사법살인’의 기획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이 과거를 돌아보며 ‘비방자’, ‘박해자’, ‘폭행자’라고 폄훼하며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하는 건 지나친 감이 있습니다. 바울은 바리새인으로서 유대교 사회를 어지럽히는 신흥종교집단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사람들은 신성모독의 중죄를 범한 사람들이라 당시 유대인의 법감정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을 사형에 처하는 게 지나친 게 아니었습니다.(신13:6~11) 그러나 바울은 핑계대지 않습니다. 모르고 한 짓이었지만, 자신은 ‘죄인 중에 괴수’라고 인정합니다.


사람은 다 죄인입니다.(시14:2~3)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롬7:18~19)


‘죄인 중에 괴수’에게 ‘사도’의 옷을 입혀주시는 것, 이것이 은혜입니다.(고전15:9~10) 하나님은 괴수를 사도되게 하십니다. 괴수를 사도로 보내십니다. 바울은 괴수이면서 동시에 사도입니다. 다만 사도가 된 바울은 더 이상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로 살지 않습니다. 바리새인이었을 때 진리로 착각했던 그 미망에서 벗어난 겁니다. 


비방자였던 바울이 오히려 비방을 받으며, 박해자였던 바울이 이제는 박해를 받으며, 폭행자였던 바울이 생명까지 위협받는 폭행을 겪으며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났지만,(고후11:23~27) 바울은 여전히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합니다. 바울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인신매매를 하는 자’등 죄인의 유형을 언급하는 끝에 자신이야말로 ‘죄인 중에 괴수’라고 규정합니다.(딤전1:9~10) 존속살인자, 동성연애자, 인신매매범을 죄인이라 소개하면서, 그 ‘죄인 중에 괴수’로 자신을 정조준 합니다.


바울에겐 모든 사람이 거울인 겁니다.



카라바지오, '나르키소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탄하다가도 내 속에 있는 잔인한 웃음과 파렴치한 표정에 놀라곤 하지요. 저는 그렇습니다. 죄인들을 보면, 그들 속에 내 모습이 있습니다. 파렴치하고 잔인한 모든 죄인들이 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카톡이나 페이스북에 동성애자들을 향한 혐오와 무슬림들을 향한 공포가 떠돌아다닙니다. 최초의 발화자는 아마 그리스도인일 겁니다. 과연 그리스도인일까요? 진정 그리스도인일까요? 적어도 바울의 교리와 설교를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동성연애자들보다 무슬림보다 자신이야말로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하지 않을까요.


타인의 끔찍한 죄는, 내 은밀한 죄를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차마 입에 올리기 꺼려지는 죄인이라도 나를 돌아보는 거울이 되어 내 맘에 잔인함과 내 몸에 음란함이 여전함을 들여다보는 거울이 됩니다.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는 죄인의 본성을 들여다보고, ‘오직 은혜’로만 ‘사도’가 되었음을 우리도 바울처럼 선포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도로 세상에 보내셨듯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여러 이름으로 세상에 보내십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니, 죄인이 의인됩니다. 죄인을 의인으로 부르시고, 의인되어 세상을 살게 하십니다.


의인되었다고 해서, 십자군 노릇하면 안 됩니다. 십자군이 되어 무슬림과 동성연애자를 죽일 듯 단죄하는 건, 적어도 바울의 방식은 아닙니다. 예수께서도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죄인들을 향해 분노하시지 않고, 오히려 변호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그리스도인은 십자군이 되어 죄인을 죽이는 사람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죄인을 위해 죽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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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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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권석기 | 작성시간 16.05.08 선을 행할 줄 알면서 행치않는 것도 죄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오늘 지나가는 길에 도울일이 있거든 지나치지 않고 도울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통하여 제게 주신 말씀을 귀히 받아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영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5.08 죄,는 힘이 세네요. 구조와 상황과 형편 속에서 맞닥뜨려야하는 죄와 그 세력이 참 강하고 무섭습니다. 싸우고 사랑하고, 이걸 바울은 '선한 싸움'이라 표현합니다.

    할 수 있는 일을 찾으시는 권사님의 수고가 알음답습니다 ^*^
  • 답댓글 작성자권석기 | 작성시간 16.05.09 김영준 저는 결혼전에 전도사였어요 지금은 교회에서 집사님이라고 하죠 권사님은 아녜요~
    매주 목사님 말씀으로 위로받고 건강해져가고 있어요 참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영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5.09 권석기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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