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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삼독(書三讀) _ 딤전2:8~15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6.05.29|조회수205 목록 댓글 0

바울은 여성을 혐오하는 걸까요?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딤전2:11~14)


바울이 살던 당시엔 문맹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여자를 남자보다 열등하다고 여기는 그리스문화권에서 여자가 글을 배울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자들이 지도자 역할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는데, 무당과 이단이었습니다. 창녀 역할을 겸한 무당의 말을 신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 이단이었던 영지주의Gnosticism에 빠진 사람들 사이에선 여자들이 지도적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바울이 여자들에게 ‘일체 순종’을 요구하고,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자칫 교회의 여자들이 창녀나 무당으로 취급받을 수 있고, 영지주의자들의 모임으로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현실적인 고려를 하면서, 동시에 현실 너머를 내다봅니다. 여자들에게 ‘조용히 배우라’고 합니다. 성경을 읽을 수 있을 만큼 글을 배우고, 성경을 들으며 읽으며 공부하라고 합니다. 여자들에게 ‘조용히 배우라’는 것은 예수께서 ‘발치에 앉아..말씀을 듣’던 마리아를 옹호하시던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눅11:39) 예수께서는 분주한 때에 집안일에 참여하지 않고 공부하고 있는 마리아를 ‘좋은 편을 택’한 사람이라고 지지하셨지요.(눅10:42) 예수께서 마리아를 지지하고 옹호하신 것과 또 바울이 당시 여자에게 ‘조용히 배우라’고 권면하는 것은 어떤 페미니스트보다 급진적인 제안이었습니다. 마르다가 그랬던 것처럼, 여자들도 싫어할만한 말씀이었습니다.(눅10:40)


여자들에게 ‘배우라’고 권면한 바울은, 교회 지도자인 디모데에게도 같은 권면을 합니다.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딤전4:13) 여자들에게 ‘조용히 배우라’하신 것처럼 디모데에게도 ‘읽는 것’에 ‘전념’하라고 하는 겁니다. 적어도 공부해야한다는 점에서 바울은 여자들과 교회의 지도자인 디모데를 같은 위상에 두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가르치고 권면하는 여자들이 무녀나 창녀로 취급받지 않고, 영지주의자들로 오해받지 않을 상황이 되면 여자들도 디모데처럼 읽는 것뿐만 아니라 권하고 가르치는 일을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더러 해석을 잘못 해서, ‘남자를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고 한 바울의 표현을, 남편에게 순종하고 애나 낳아 키우라는 말로 들을 수 있습니다.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표현은 육체와 관련된 것을 다 악하다고 여겨 예수께서 육체를 입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영지주의자들의 교리에 미혹된 사람들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육체와 관련된 것을 악하다고 여겨서 특정 음식을 먹어서도 안 되고 결혼도 금기시했습니다.(딤전4:3) 영지주의자들은 식욕과 성욕 자체를 죄라 여겼습니다. 바울은 무엇을 향한 욕구desire를 죄라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니까요.(딤전4:4) 사람의 육체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라 선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심히 선하다고 하셨는데, 이것을 무시하는 영지주의 지도자들 중에 여자가 많았기 때문에 바울은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다는 극단적 표현으로 영지주의자들을 공격하기도 합니다.(딤전2:14) 이런 당시 배경 속에서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고 서로의 몸을 사랑하는 것을 악하다고 하는 영지주의자들의 교리에 반박하기 위해, 바울은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했던 겁니다.


성경 낱장을 새끼줄과 함께 꼬아 지게 멜빵을 만들어, 지게 멜빵 속 성경을 읽고 권했던 우리 조상들처럼,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는 ‘권서인’勸書人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교회는 누구나 ‘조용히’ 배워야 하고, 읽는 것과 가르치는 것과 권면하는 것에 전념해야 합니다. 민들레교회가 예배 후에, 여신도들이 신학서적을 읽으며 대화하는 이유이고, 어린이들이 성경 동화를 읽고 숲으로 가는 이유이고, 청년들이 두꺼운 인문학 서적에 도전하는 이유입니다.



신영복 선생은 ‘서삼독’書三讀, 책을 세 번 읽으라고 합니다. 일독一讀은 책 속의 텍스트를 읽는 것이요, 이독二讀은 책을 쓴 저자를 살피는 것이요, 삼독三讀은 나를 읽는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책을 읽는 최종 목적은 나를 읽는 것이지요. 내가 누구이고,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들여다보기 위해 책을 읽는 것입니다. 책은 그래서 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카지노 도박장에는 거울이 없다고 하는데, 내 일상 중에 거울이 걸려있습니까? 책이라는 거울이 없다면, 그래서 내 부끄럽고 아프고 슬픈 모습을 보지 못한다면 나는 어쩌면 건전한 일상이라는 도박에 빠져있는 건지 모릅니다. 거울 앞에 서서 자기 자신과 직면해야 카지노의 소음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거울을 보며 깨어있는 이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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