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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서 _ 벧전1:1~2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6.07.17|조회수268 목록 댓글 0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이라 합니다만, 사람의 말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 미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옮겨보려는 과욕을 부리다 일을 그르치곤 합니다. 지나치면 오히려 미치지 못합니다.(過猶不及)


사람이 어떻게 설교를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을 장황하게 진술하거나,(행22장) 은혜로 사도되었음을 편지마다 강조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한계, 또 말의 한계, 그 한계에서 비롯될 오해와 저항을 염두에 두고 변증하고 설명합니다.


St. Peter Preaching the Gospel in the Catacombs  by Jan Styka


그러나 베드로는 변증도 설명도 없이 설교를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왜 자신이 사도인지 어떻게 사도가 되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습니다.(벧전1:1)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듯, 베드로는 사도여서 그 사도됨을 변증하려들지 않습니다. 베드로의 자기소개는 그물을 당기던 어부의 두꺼운 손바닥처럼, 투박하나 단단합니다. 노동하는 사람의 두꺼운 손바닥 같은 베드로의 말은 변증이나 설명을 필요치 않습니다.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은 먹을 것을 청하는 객에게 손바닥을 보여 달라 합니다. 굳은살이 박여있으면 집안에 들여 숙식을 베풀지만, 일하지 않아 손바닥이 부드러우면 쫓아냅니다. 바보 이반은 사람은 어떠해야하는지, 알고 있는 지성인입니다.


예수는, 로마 제국의 하청을 받은 건축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했을 목수의 아들이었습니다. 목수의 아들 예수는 성인이 될 때까지 아버지의 일을 도왔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는 전업 목수가 되어 로마 제국의 공사 현장에서 부역하면서 어머니와 동생들의 생계를 책임졌을 것입니다. 당연히 예수의 손바닥엔 못이 박여 있었겠지요. 예수께서 러시아에 태어나셨다면 바보 이반의 집에 묵으실 수 있었을 겁니다.


목수의 아들 예수는 온 세상을 구하기 위한 길에 섰습니다. 그러다가 수많은 유대민족주의자들처럼 제국의 정치범들을 처형하던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예수를 ‘그리스도’라 부르고, 자신을 ‘그리스도의 사도’라 소개합니다. 못이 박여있던 두꺼운 손바닥에 못이 박혀 돌아가신 예수가 ‘그리스도’시오, 그물 치며 살던 자신은 ‘그리스도의 사도’랍니다.


본래 ‘그리스도’란, 로마 제국의 제1시민이요 최고 존엄자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향한 칭호였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구축해 놓은 팍스 로마나 체제에서 처형당한 예수를 ‘그리스도’라 부르고, 자신을 ‘그리스도의 사도’라 칭하는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나에겐, 누가 ‘그리스도’입니까? 그리고 나는 누구입니까?


우리 시대에 유력한 그리스도는 ‘돈’입니다.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넘어선, ‘생산수단’이 된 돈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이십니다. 또 ‘권력’이 그리스도 노릇합니다. 중앙권력이든, 지방권력이든 십년을 견디지 못할 바벨탑의 그늘에서 구원을 맛보고자 하는 것이 우리네 깜냥입니다. 자본과 권력이 보통 사람들의 목줄을 틀어쥐고 그리스도 노릇하는 세상에서,


베드로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소개합니다. 로마의 황제가 아니라, 갈릴리의 청년이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것은 무식자의 어리석음 같습니다만, 어부 베드로는 과연 어리석었을까요.

아니오, 풀은 바람이 불기 전에 눕습니다. 민초들은 바람에 베이지 않을 만큼 충분히 영악합니다. 풀이 나무처럼 꼿꼿하게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데엔, 그만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어리석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가 살아있기 때문에 베드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소개하는 겁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죽었지만, 예수는 살아있다는 겁니다.


‘사도’(άπόστολος)는 보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났던 제자들을 ‘사도’라 하고, 그 제자들의 직속 제자들을 ‘속사도’라 합니다만, 보냄을 받은 사람들이 어찌 그들뿐이겠습니까.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 역시, 예수께서 보낸 사람들이지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자기소개서에 들어갈 첫 문장입니다. 제국의 폭력에 사형당한 예수가 역사책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역사’속에 살아있는 까닭에 예수는 그리스도요, 역사 속에 부활한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도입니다.


40도가 넘는 공장에서 여름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어깨에 부황 뜬 채 창고 정리를 하며, 하루 12시간 가까운 노동을 감내하고, 나이가 들어도 자라지 않는 성인들과 친구하고, 작은 사람들을 위해 공연하고, 좁은 공간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어린 생명들에 갇혀 영어의 일상을 감당하는 사람들, 그래서 어부 베드로처럼 가슴팍과 손바닥에 못이 박여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일상에 예수께서 부활하셨음을 믿는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입니다.


말로 사는 설교자에겐 긴 변증이 필요합니다만, 삶을 사는 사람들에겐 다른 증거가 필요 없습니다. 베드로처럼 당신은, 변증도 설명도 필요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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