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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vs 천국 _ 벧전2:11~17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6.07.24|조회수282 목록 댓글 0

베스파시아누스가 황제가 되었고, 그 맏아들 티투스가 예루살렘을 파괴했습니다. ‘한 유대인 역사가의 기록에 의하면 진압 과정에서 200만 명이 죽었다고’하고, ‘타키투스에 따르면 60만 명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A.D. 70년에 유대전쟁을 겪으면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하신 예수님의 예언은 이루어지고야 말았습니다.(마24:2)



A.D.71년 유대 정복을 기념하며 만든 주화. 베스파시아누수 황제의 옆얼굴이 새겨져있다.




예루살렘은 이제 돌아갈 수 있는 땅이 아닙니다. 흩어진 사람들이 명절이면 예루살렘에 모였던 이유는 거기에 성전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행2:5)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은 채 성전은 파괴되었습니다. 돌아갈 곳이 없는 ‘나그네’가 된 겁니다.(벧전1:1,17;2:11)


나그네는 동족 200만 명을 죽인 황제가 다스리는 하늘 아래를 살아내야 합니다. 어디를 가든, 나그네는 원수의 장막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로마제국의 황제가 제정한 ‘인간의 모든 제도’가 나그네가 머무는 모든 땅에 말뚝 박혀있습니다.(벧전2:13) 누가 지금 로마 황제가 꽂아 놓은 말뚝 너머로 날아갈 수 있겠습니까. 끔찍한 원수의 품에서 살아야 합니다.


끔직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살아가야 합니다. 생명生命은 살아있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현실로는 분명 로마 황제 치하지만 진실로는 주의 장막 아래인 까닭입니다.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며 내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시61:4)


로마 황궁도 주의 장막 아래에 있습니다. 황제도 주님의 통치를 받고 있는 겁니다. 지혜로운 황제라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들의 형편을 살필 것입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전임자인 네로에 비해서 합리적이었습니다. 적어도 주의 장막을 찢고 스스로 신이 되어버린 다른 황제들만큼 악랄하진 않았습니다.


다른 황제들에 비해 합리적이었던 베스파시아누스는 세금 행정을 잘 관리했습니다. 황제가 파견한 세금징수관들이 악랄하게 가난한 주민들을 착취하였지만,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세금징수관들을 로마로 불러들여 먼저 이들의 노고를 위로한 후에 이들이 개인적으로 착복한 사유재산을 모두 몰수하여 국고로 환수한 다음 억울한 희생자들에게는 보상을 제공’하였습니다.(인드로 몬타넬리, 『로마제국사』,320쪽)


베드로전서가 회람되던 당시는 네로 황제나 도미티아누스, 트라야누스 때처럼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박해가 거의 없었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치하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박수암, 『신약주석 공동서신』, 109쪽) 예루살렘은 멸망했지만, 그래도 제국 어디에선가 유대인으로서 혹은 기독인으로서 정체성을 심각하게 위협받지 않아도 되는 때였고, 제국의 세금 행정도 ‘악행하는 자는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는 방식으로 집행되던 시기였던 거지요.(벧전2:14)


세금 행정이 합리적으로 집행되면, ‘나그네 같은’ 백성들이 그나마 숨 쉴 구멍이 있기 때문에 베드로는 ‘왕이나’, ‘총독’에게 ‘순종’하라고 권면합니다. 원수를 갚기 위해 무모하게 생명을 걸지 말고, 원수의 하늘 아래에서도 희미하나마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라는 겁니다.(벧전2:13,14) 


정치적으로 암울하고 원수 황제가 다스리는 시대에, 교회는 순종하나 스스로 ‘거룩한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벧전2:9) 교회는 악한 권력을 향하여 칼을 겨누지도 않고, 악한 권력의 칼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교회는 칼로 악한 사람을 죽이지 않지만, 악한 권력에게 죽임 당하지도 않습니다. 죽임당해도 부활하며 여전히 역사 속에 살아 남아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정권교체를 할 수도 없고, 우리 교회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을 막을 수도 없지만, 우리 교회는 스스로 ‘거룩한 나라’가 되어 강도 만난 자 같은 ‘도시 난민’의 입국을 허가합니다.(눅10:36) ‘거룩한 나라’는 참 작은 겨자씨 같고, 보이지도 않는 누룩 같습니다만, 나무가 되어 누군가의 둥지를 허락하고, 온 도시에 부풀어 올라 하늘의 양식을 맛보여 줍니다.(마10:31~33) 


교회가 세운 ‘거룩한 나라’는 작지요. 교회가 뿜는 빛은 그래서 희미합니다. 그러나 수십억 광년 너머의 별빛은 사람들의 길을 비춰주지 못하지만, 손에 쥔 전화기 불빛이 길을 비춰주는 것처럼, 여기 흑암을 사는 사람들에겐 수십억 광년 너머 별빛보다 우리 손에 잡힌 전화기가 더 밝습니다. ‘거룩한 나라’인 교회는 ‘제국’보다 훨씬 작지만, ‘제국’보다 ‘거룩한 나라’가 더 밝습니다.


황제가 다스리는 ‘제국’보다 교회가 이룬 ‘천국’은, 훨씬 작지만 더 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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