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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문란 _ 골2:8~15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6.09.04|조회수76 목록 댓글 0

통치자들과 권세들이 있습니다.(골2:10,15) 세상에서 가장 높은 탑 꼭대기에서 온 세상을 다스리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접할 수 없는 존재들이라, ‘천사’같기도 합니다.(골2:18) ‘하나님의 아들’인 것만 같습니다.(창6:2,4)


‘하나님의 아들’, ‘천사’같은 종교적인 단어를 차용해서 통치자들을 포장하기도 합니다만, 그들은 ‘초등학문’에 지나지 않는 ‘헛된 속임수’를 ‘철학’이라 과장하여 세상을 다스리려 합니다. 제국의 통치자들과 권세들은 특히 ‘사람의 전통’을 강조하여, 왕과 귀족과 영주를 중심으로 구축한 세상의 안정을 중요시합니다.


이에, 질문을 던지고 저항하는 것을 ‘국기문란’이라고 정죄하기도 하지요. 예수께서도 로마 제국의 통치자들과 권세들에 의해 정죄 받아 십자가에 처형당하셨습니다. 십자가는 ‘국기문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처형하는 사형도구였습니다.


예수님을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에게 고발한 사람들은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를 신성 모독죄로 고발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국기문란으로 연결 짓는 영악함을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자칭했다는 것이지요.(마27:43)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종교적 호칭은 로마 황제만이 독점할 수 있는 것인데, 한낱 갈릴리 나사렛 출신의 목수 노동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칭한다는 것이 기소 이유였습니다. 로마 황제가 독점하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영예로운 이름이 다른 사람에게 붙여지는 것은 ‘국기문란’이었던 겁니다.


부패한 성전의 제사의식을 극복하고자 했던 세례 요한이 헤롯에 의해 참수 당했던 것처럼, 성전이 주는 경제적 이득에 눈이 멀어있는 제사장들은 로마의 총독을 이용해 예수를 죽였습니다. 부패한 종교권력에 저항했던 세례요한과 예수는 정치권력의 손에 참수 당했고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은 동일체가 되곤 합니다.


권력자들은 ‘헛된 속임수’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국기문란’의 죄를 물어 죽이려 합니다. 그들이 만들고 유지하고자 하는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천국’도 아니었습니다. 로마의 평화는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을 무력으로 제압하고서야 얻을 수 있는 평화였습니다. 그 평화를 유지하려면 다른 사람을 죽이고 정권을 유지시켜야 했지요. 끊임없이 다른 민족과 세력을 죽여야만 유지되는 ‘로마의 평화’는 천국의 가치가 아닙니다. 로마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 로마의 평화가 아닌 ‘천국’의 임재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는 세례 요한과 예수는 ‘국기문란’을 꾀하는 반체제 인사들이었습니다.(마3:2;막1:15)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혀 사는 건, 대단히 고단한 노릇입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둥지가 있건만, 예수에게는 ‘머리 둘 곳’이 없었습니다.(마8:20) 예수님은 사탄에게 경배하고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취할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하나님만 섬기기로 하셨지요.(마4:9,10) 예수를 따르는 이에게 일상의 고단함은 숙명입니다. 일용할 양식이 있고, 해지 않은 옷이 있고, 발이 부르트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의 일상입니다.(신8:3~4)


‘하나님나라’와 ‘천국’을 마음에 품고 입에 담는 순간, 권력과의 불화가 없을 수 없고, 제국의 국기를 문란케 한다는 의혹을 피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몸이라면, 하나님나라와 천국을 기다리는 교회는 국기문란의 진원입니다.(엡1:23) 진원으로서 교회가 얼마만큼의 규모로 땅을 흔들고 있는지 측정해본다면, 얼마나 찍힐까요. 한반도에 교회가 일으키는 관측 가능한 지진이 있긴 있을까요. 지진을 일으키지 않는 교회로 인해 통치자들과 권세들은 십자가를 철거했고, 교회는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십자가를 잃어버렸습니다.(골2:15)


김포시립도서관에서 독후감 공모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도서관이 지정한 책 10권 중 두 권이 스님들이 쓴 책이었고, 목사가 쓴 책은 한 권도 지정되지 않았습니다. 목사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설교 원고를 씁니다. 원고의 양으로 치면, 어떤 종교인보다 많은 글을 쓰고 있을 텐데, 사람들은 목사의 글에 관심이 없습니다. 목사의 말과 글이 이 땅에 지진도 국기문란도 일으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사로서, 부끄러웠습니다.


그리스도의 할례, 진정한 세례를 받아 다시 태어나야할 시절입니다.(골2:11,12) 할례도 세례도 죽음을 상징합니다.(창34:25;벧전3:20~21) 예수께서도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것처럼, 사람에게도 부활이 있습니다. 부활한 사람이 참 사람입니다. 거짓 나를 죽이고 참 나가 다시 태어나는 신비가 있습니다. 다시 태어날 때에, ‘국기문란’을 야기하는 ‘천국시민’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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