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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터 _ 창24:1~67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6.09.17|조회수70 목록 댓글 1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뜻을 따라 길을 나섰고,(창12:1) 평생 땅을 소유하지 못한 채 지냈습니다. 아내 사라가 죽을 때에야 겨우 아내를 장사할 수 있을 만큼의 땅을 갖게 됩니다.(창23:16~18)


아브라함은 며느리를 찾을 때,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사람이라야 한다고 합니다.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창24:3~4) 아브라함은 자신이 고향을 떠났듯이, 고향을 떠날 줄 아는 사람을 며느리 삼으려고 합니다.(창24:58) 보이지 않는 뜻을 믿고, 뜻이 있는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을 찾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의 명을 받은 ‘늙은 종’의 기도가 아름답습니다.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으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 곁에 서 있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창24:13~14


아브라함의 명령과 ‘늙은 종’의 기도를 축약하면, 나그네를 환대하는 사람이 우리 종족이라는 거지요. 내 종족은 피부색이 같은 사람이 아니요, DNA가 유사한 사람이 아니요,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물을 마시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예수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섰나이다 하니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마12:47~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예수의 가족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은 보이지 않는 것을 신뢰하며 길을 나서는 것이었고, 또 뜻을 따라 길을 가는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며느리는 이 뜻을 아는 사람이어야 했고,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주인의 마음을 헤아려 나그네에게 물을 떠주는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셔서, 나그네를 환대하는 소녀를 만나게 하셨고, 그 소녀는 아브라함의 종족이었습니다. “리브가...그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소생이라...그가 우물로 내려가서 물을 그 물동이에 채워가지고 올라오는지라 종이 마주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내 물동이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게 하라 그가 이르되 내 주여 마시소서”(창24:15~18)


뜻을 따라 사는 사람에겐, 뜻하지 않는 만남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가는 길은 막막했지만, 기도대로 ‘순조롭게’ 사람을 만났습니다.(창24:12) 학연과 혈연과 지연이 아니라,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유착이 아니라, 오직 뜻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줄로 엮여 서로 만나게 됩니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만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그래서 나그네를 환대합니다. 지난주에 베트남 여성과 몽골 여성을 만났습니다. 김포시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서 통역을 하시는 분들인데, 한국어교실 이상의 공부를 하고 싶다 하셨습니다. 우리가 모이는 공간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강좌를 열면 좋겠습니다. 공간 ‘민들레와 달팽이’가 다문화 가정 여성들이 모여 공부하고 수다 떠는 우물터가 되면 좋겠습니다. 또, 계속해오던 발달장애인자조모임을 여기에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당사자 5명, 조력자 8명이 모여 왁자하게 지난여름을 돌아봤고, 일상을 점검했습니다. 만남의 횟수가 더할수록 대화의 농도가 짙어지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나그네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 다 나그네인데, 나그네로 사는 사람이 있고 나그네이길 모면하려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지나가야하는 인생인데, 영원히 정주할 줄 알고 쌓으려는 사람은 자신이 나그네인 줄 모르는 거지요.


프로이드는 구약성경의 여호와를 ‘산의 신’이라고 이해합니다. 프로이드가 말하는 ‘산’은 나무도 없고 숲도 없어 계곡에 물이 흐르지 않는 척박한 산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여호와에겐 신전도 없고 신상도 없습니다.(출20:4) 보이지 않는 뜻이 산울림으로 퍼질 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습니다.(히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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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파랑하늘 | 작성시간 16.09.18 아멘~

    나그네라는 말이 참 좋아요
    서글프기는 하지만
    가벼울 수 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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