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국경없는마을 _ 창31:43~55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6.10.09|조회수343 목록 댓글 0

조카와 삼촌 사이에 국경이 그어집니다. “라반이 또 야곱에게 이르되 이 기둥이 증거가 되나니 내가 이 무더기를 넘어 네게로 가서 해하지 않을 것이요 네가 이 무더기 이 기둥을 넘어 내게로 와서 해하지 아니할 것이라”(창32:51~52) 국경이 그어진 이유는 서로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조카는 힘 센 삼촌이 자기를 해칠까 두렵고, 삼촌은 점점 강해질 조카가 두렵습니다.


국경선으로 삼은 돌무더기와 돌기둥을 ‘미스바’라 불렀는데,(창31:49) ‘미스바’의 뜻은 ‘감시의 탑’입니다. 감시의 탑 ‘미스바’는 두려움으로 쌓은 탑입니다. 두려움이 쌓이고 쌓여 감시하는 탑이 되었습니다. 서로를 향한 두려움이 넘을 수 없는 탑이 되어 오갈 수 없는 세상이 됐습니다.


라반과 야곱이 쌓은 탑은, 야곱이 20년 전에 라반을 찾아올 땐 없었고, 물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없었는데, 있습니다.


사람은 각자 쌓아놓은 탑이 있습니다. 돈을 쌓아 탑을 만듭니다. 스펙과 경력을 쌓아 탑을 만듭니다. 그냥 세월이 쌓여 탑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이 쌓은 모든 탑은 깊은 두려움을 기단으로 삼습니다. 그리고는 탑돌이를 하지요. 자기가 쌓아놓은 탑 주위를 돌며 비나리를 합니다. 돈과 스펙과 경력과 세월은 이렇게 신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엔 없었는데 존재하는 것, 마치 신의 위엄을 갖추고 사람들의 두려움을 이용해 경배 받는 것, 이것이 ‘악(惡)’입니다. 어거스틴은 악을 정의할 때, ‘없는데 있는 것’이라 표현했습니다. 본래 없어도 되지만, 현실 속에서는 이상하게 존재하는 것이 악입니다. 그것이 도구이든, 조직이든 없어도 되지만 존재하는 게 너무 많지요. 현실 속에 악이 너무 많아서, 악에 익숙해진 탓에 ‘필요악’이라는 말을 개발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수식어를 넣어도 악은 악이지요. 라반과 야곱 사이에 쌓은 탑 미스바는 쌍방 간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든 국경선이지만, 소통을 막는 장벽이 돼버렸습니다. 두려움이 소통을 막습니다. 야곱은 20년 전보다 부자가 됐지만, 부자 야곱이 누릴 수 있는 세상은 오히려 좁아졌습니다. 





바벨탑이 무너졌던 것처럼, 사람이 두려움으로 쌓은 탑은 무너지기 마련입니다.(창11:1~9) 10월 7일 금요일 저녁, 감시의 탑 ‘미스바’를 넘어온 여성들을 만났습니다. 베트남에서 온 이주여성들 다섯 분이 여기 ‘민들레와달팽이’에 오셨습니다. 9년 전에 한국으로 시집 와서 아이들을 낳아 키우고, 다양한 현장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계셨습니다.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이유를 물으니,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싶은데 잘 모르니까 어렵다고 하십니다. 자신들보다 한국말이 유창하고 한국문화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국경선을 넘어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여성들은, 한국 속에, 심지어 가정 속에 그어진 경계선을 또 넘기 위해 비 내리는 밤 여기 ‘민들레와달팽이’를 찾아왔습니다.


검정고시는 이주 여성들 앞에 그어진 심리적 국경선을 넘을 수 있는 여권이 될 수 있겠습니다. 검정고시는 아시아에서 온 이주민들을 낮추어보는 한국인들의 모들뜨기 눈을 교정할 수 있는 장치가 될 수 있겠습니다. 검정고시는 이주민들의 다문화 역량을 한국 사회에 흘려보낼 수 있는 샘 근원이 될 수 있겠습니다.


야곱은 스스로를 나그네라 합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47:9) 야곱의 아버지 이삭도, 할아버지 아브라함도 나그네였으니, 야곱의 하나님은 나그네의 하나님인 셈입니다.(출3:6)


나그네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그네 대접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를 대접한 사람도 있었습니다.”(히13:2) 하나님과 천사를 대접하듯,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창18:1~8)


나그네인 이주 여성들이 검정고시를 보게 해달라고 요청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주여성들이 공부할 수 있는 교실을 준비하고 책을 마련하고 교사가 되겠습니다. 나그네를 돕는 것은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만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이 열립니다. 여기저기 두려움으로 그어진 경계선들 때문에 갈등과 긴장의 원인이 되는 국경선에도, 평화가 있습니다.(창31:54~55) 탑이 존재하는 게 현실이지만, 탑돌이 하지 않겠습니다. 악이 존재하는 게  현실이지만, 하나님만 하나님이십니다.


국경이 존재하는 게 현실이지만, 우리 마을엔 국경이 없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