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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남아야 함께 갑니다 _ 창32:1~33:4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6.10.16|조회수186 목록 댓글 0

공사 중입니다. 스테인레스 나사못이 필요해서, 공구상가에 다녀왔습니다. 민들레교회 예배당이 둥지 틀었던 공구상가에 다녀왔습니다. 3년 여 예배드렸고, 떠나온 지 1년 6개월 가까이 됐습니다. 예배당 창문 위에 달았던 간판 빛이 바랬고, 비어있었습니다. 공구 상가에서 처음 예배드리던 날, 14평짜리 콘크리트 바닥 위에 얇은 은박 돗자리를 깔았던 게 잊히지 않습니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나면, 주중에 뭘 해야 할지 누구를 만나야할지 몰라 종일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전화도 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시간이 많아지면, 저를 찾는 전화가 많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지팡이 짚고라도 갈 곳이 없었습니다.


야곱은 지팡이를 짚고 갈 곳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내가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창32:10) 지팡이만 갖고 길을 나섰던 야곱이 이제, 두 떼나 되는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창32:7)


양도 부럽고, 소도 부럽고, 낙타도 부럽지만, 제일 부러운 건 ‘동행자’(the people who were with him)입니다. 야곱과 함께 하는 동행들은 이전에 가 본적 없는 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야곱의 아내도, 자식도 처음 가보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저 야곱을 신뢰하고 처음 가는 길을 나선 사람들이, 지금 야곱의 동행들입니다.


교회는 예수의 동행들입니다. 야곱과 함께 했던 동행들이 처음 가 본길을 갔던 것처럼, 예수의 동행들인 교회도 그저 예수를 신뢰하고 이전에 가본 적 없는 길을 갑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예수를 믿고 가는 사람들이 교회입니다.


민들레교회를 개척할 때, 임대아파트에서 모였습니다. 다른 교우의 가정에서 모이기도 했습니다. 공구상가에 돗자리 펴 예배드리고, 동네도서관에서 그림으로 성경을 이야기하다가 책을 쓰고, 감리교회와 함께 공간을 나누어 예배드리고, 발달장애인 자조모임을 진행하고, 성서인문학을 공부하는 모임을 꾸리고, 여기 카페였던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입니다. 이제 다음 주 토요일부터 베트남‧캄보디아 이주민들과 검정고시를 공부합니다. 역시 가보지 않은 길입니다.


야곱과 그 동행들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다가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났고,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들 을 만난 곳을 마하나임(מחנים)이라 부릅니다.(창32:2) 아마, 하나님의 사자들이 두 팀으로 나누어져 있었나 봅니다. 마하나임이라는 이름 속에 ‘두 진지’(two camps)라는 뜻이 녹아 있거든요.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들이 군대를 이룬 모습을 보고, 형 에서를 만나기 전에 조직개편을 합니다.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이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창32:7~8)


하나님의 군대가 두 진지로 나뉘어 있었다는 것은 적어도 두 명의 지휘관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야곱이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었다는 것도, 전체에 대한 지휘권을 양도했거나 포기했다는 뜻이겠습니다. 조직과 소유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고,



Gustave-Dore, Jacob Wrestles with the Angel



야곱은 홀로 남습니다.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 새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창32:22~24)


홀로 남은 야곱은 날이 새도록 ‘어떤 사람’과 씨름합니다.(창32:24) 나중에 야곱은 날이 새도록 씨름했던 사람이 ‘하나님’이었다고 깨닫습니다.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창32:30) ‘어떤 사람’이든 ‘하나님’이든, 야곱은 홀로 남아 생명을 걸고 사투를 벌였습니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에서를 만나기 전에 야곱은 자신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누군가와 날이 새도록 사투를 벌인 것입니다.


홀로 남았을 때 만난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었습니다. 홀로 남았을 때 야곱은 ‘어떤 사람’과 목숨을 걸고 씨름하게 됐고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는 부상을 입고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창32:25,31) 그리고, 야곱은 자기 다리를 절게 만든 사람에게 축복을 받아냅니다.(창32:29) 누구인지 이름도 모르는 낯설고 위험한 만남을 통해 야곱은 축복을 받습니다. 자기 다리를 절게 만든 ‘어떤 사람’을 ‘하나님’이라 고백합니다. 위험했던 어떤 사람이 나를 축복해주는 하나님 같은 존재가 된 겁니다. 자기 다리를 절게 만든 사람에게 축복을 받아낸 야곱은 에서의 용서까지 받아냅니다.(창33:4) 가족과 조직을 떠나 홀로 남겨지는 것은 위험하고, 위험한 결과를 맞기도 하지만 종국엔 축복을 받고, 에서의 용서도 받습니다.


홀로 남겨졌을 때 낯선 이들과의 만남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고,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만남의 결과, ‘축복’을 받고 ‘용서’를 받습니다. 내 허벅지 관절을 어긋나게 한 사람이 나를 축복하고, 죽일 듯 살의로 가득하던 사람이 나를 용서합니다. 길을 가다가 홀로 남아도, 가족과 조직을 떠나 홀로 남아도, 소유와 지배를 포기한 채 홀로 남아도 죽지 않고 축복과 용서를 받습니다.


그러나 홀로 남게 되면 죽을 수도 있겠지요. 예수께서는 길을 가시다가 홀로 남아 기도하셨습니다. 홀로 남아 이렇게 기도하셨지요.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21:41~42) 기도의 결과 예수께서는 홀로 남겨져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죽어도 다시 삽니다. 부활하셨고 여전히 길을 가는 이들과 동행하십니다.


예수께서 가실 길을 따라가며 예수와 동행하는 부자(父子)가 바람 들어오는 외벽을 막는 공사를 해주셨습니다. 이제 안쪽으로는 책장까지 짜주실 것입니다. 민들레교회와 동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위험한 십자가의 길 먼저 가신 예수가 있어, 가족과 조직을 떠나 혼자 남은 길에도 사람이 있습니다. 


홀로 남아야 함께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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