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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下野) _ 사39:1~8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6.10.30|조회수783 목록 댓글 0

형이 동생을 팔 순 없습니다. 동생은 형의 사유재산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시장경제도 동생을 사고파는 시장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동생을 자신들의 사유재산으로 여기고, ‘미디안 사람 상인들에게 팔아버립니다.(37:28) 미디안 상인들을 통해 신분이 세탁된 요셉은 다시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노예로 팔립니다.(37:36) 사연을 모르는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자식이 짐승에게 잡아먹힌 줄 압니다.(37:33)

 

세습 독재자의 핵 이빨에 개성공단이 잡아먹힌 줄 알았습니다. 개성공단을 폐쇄한 것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나름대로 치밀한 전략에 의한 결단인 줄 알았습니다. 그게 아니라, 국민이 대통령에게 위임한 통치권을 사유재산처럼 최순실이라는 개인에게 팔아버렸기 때문이란 걸 이제야 알게 됐습니다.

 

공화국인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습니다. 국민은 주권을 모아모아 대통령에게 위임하면서, 대통령에게 국가의 통치를 맡겼습니다. 통치권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지, 대통령이 어딘가에서 쟁취한 게 아닙니다. 통치권은 그러므로, 대통령이 임의로 양도하거나 팔 수 있는 사유재산이 아닙니다. 통치권은 대통령의 개인적인 수고로 획득한 사유재산이 아니기 때문에, 공인된 기관을 통해서만 행사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권자인 국민이 위임한 통치권을 대통령이 공인되지 않은 개인에게 임의로 사유재산처럼 양도했기 때문에, 아들을 잃은 야곱이 애통하고 슬퍼하며 울었듯,(37:34~35) 지금 우리 국민들이 애통하고 슬프기 짝이 없습니다. 국민이 세운 대통령이 나라를 통치하는 게 아니라, 사이비 종교인의 딸이 통치권을 행사한 사실이 드러나 분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 모아 준 주권의 총합이 통치권 아닙니까. 그래서 대통령의 통치권은 하나님의 전능하심만큼이나 신성한 것입니다. 무수히 많은 권력기관의 인사권과 다양한 국가 정책의 최종결정권이 대통령에게 위임됐습니다. 통치권은 신성한 것입니다. 이 신성한 통치권이 영생교라는 사이비교주인 최태민의 딸에게 양도됐다니요. 우리의 주권이 고작 최순실에게 넘어갔다니요.

 

King Hezekiah from Guillaume Rouillé's Promptuarii Iconum Insigniorum, 1553



유대 왕 히스기야 때에, 국가기밀이 누설된 적이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바벨론 왕의 사자들에게 유다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히스기야가...그들에게 보물 창고 곧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에 있는 것을 다 보여 주었으니 히스기야가 궁중의 소유와 전 국내의 소유를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는지라”(39:2) 국가의 기밀이 밖으로 흘러가면 국가의 주권도 잃게 됩니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왕은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39:5~6)

 

국방과 외교 문서가 외부인의 피씨에 저장되고,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힘들었을 때 힘이 되어준 지인에게 순수한 마음으로연설문의 첨삭을 부탁하셨습니다. 히스기야도 병들어 힘들었을 때 자신을 찾아 준 바벨론 왕의 사절단에게 아마 순수한 마음으로 무기고까지 보여주었을 겁니다.(39:1~2)

 

히스기야의 순수한 마음 때문에, 히스기야의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 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될 것입니다.(39:7) 히스기야는 자손 중에서 몇이 바벨론 궁의 환관이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당신이 이른 바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왜냐하면) 내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39:8) 통치자의 시대인식이 자기 생전의 평안과 견고함에 머물러 있다면, 이보다 비극이 없지요


광장에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입니다. 후대에 나라가 망하고 자손들이 내시가 된다 해도, 내 생전에만 평안하면 괜찮다고 판단하는 통치자의 정세 인식에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대통령의 하야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통치권을 행사할 권위를 잃어버렸습니다. 권리를 사유재산처럼 양도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내 인생은 사유재산처럼 팔거나 양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 인생을 스스로 경영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양도하기도 하고, 돈에 자기 인생을 팔기도 합니다. 내 인생을 스스로 경영하고, 돈에 자기 인생을 팔지 않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악한 관습에 저항하고, 돈이 궁해도 자본의 그늘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 영성입니다.

 

영성보다 본성을 따라 사는 것이 쉽습니다. 성령에 이끌려 사는 사람의 영성이란 우아함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도 본성을 접고 영성을 따라 살기로 하셨을 때 곤란을 겪으셨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 지라”(4:1~2) 예수께서는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로 가셨습니다. 성령은 먹을 것이 없는 광야로 인도합니다.

 

하야(下野), 광야()로 내려간다()는 뜻이지요. 광장을 운행하시는 성령께서, 광야로 이끄신다면 순종해야 합니다. 광야의 일상은 궁전의 그것처럼 우아하지 않겠지만 광야를 통과해야만 구원이 있습니다.

 

어머니를 총탄에 잃은 청년 박근혜의 구원을 위해 기도합니다. 사이비 교주 최태민이 어머니를 잃은 청년에게 접근할 때, 1966년부터 박정희 대통령과 조찬기도회를 함께 했던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은 무엇에 관심을 두었을까요?

 

재야(在野), 광야에 있다는 뜻이지요. 여기 우리가 있는 광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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