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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문신 _ 마6:19~33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7.02.26|조회수467 목록 댓글 0

저는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참 컸습니다. 코는 낮고, 입은 크고, 귀는 작습니다. 좋게 말해 개성 있단 소리 자주 들었습니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30년 만에 만나는 초등학교 동창이 제 얼굴을 알아봅니다. 그래도, 눈썹이 짙고 쌍꺼풀이 있어선지, 사람들이 제 얼굴에서 눈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진짜로 눈이 좋았으면 합니다. 좋은 눈은 쌍꺼풀이 있는지 없는지, 속눈썹이 길거나 짧은 것에 관한 게 아닙니다.

 

좋은 눈은 온 몸을 밝히는 눈입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6:22~23) 좋은 눈은 온 몸을 밝게 해줍니다.

 

온 몸을 밝게 해주는 좋은 눈이란, 초점을 잘 맞추는 눈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6:24) 예수님께서는 온 몸을 밝히는 눈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과 재물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좋은 눈은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는 눈입니다. 반대로 나쁜 눈은 재물에 초점을 맞추는 눈이겠습니다.

 

초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가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6:26~29) ‘공중의 새들의 백합화를 보라 하심은, 새를 먹이고 백합을 입히시는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라는 것이지요. 재물에 초점을 맞추면 온 몸이 어둡고,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면 온 몸이 밝습니다.

 

현실이 참, 어렵습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란 게 있어서, 재물에 집착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현실은 셉니다. 가난하면 가난하기 때문에, 부유하면 부유하기 때문에 돈에 매입니다. 예수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 중엔 보물을 땅에 쌓아 둔 부자도 있고,(6:19) 오늘이 지나면 내일 먹을 게 없는 빈자도 있습니다.(6:31) 부자는 창고가 작은 현실 때문에 걱정이고, 빈자는 창고가 없는 현실 때문에 걱정입니다. 있어도 걱정, 없어도 걱정입니다.

 

부자도 빈자도, 내일을 당겨 살 순 없습니다. 부자에게도 빈자에게도 오늘이 있을 뿐인데, 창고가 작아 걱정하는 부자는 지혜가 없고, 창고가 없어 걱정하는 빈자는 믿음이 없습니다. 현실에 비해, 우리가 갖고 있는 지혜와 믿음이 적습니다. 창고가 있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가 없으면, 창고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창고도 없는데 하나님을 향한 믿음도 없으면, 오늘을 누리지 못합니다사람은 현실에게 너무 많은 자리를 내줍니다. 현실이 아무리 세도, 현실은 오늘까지만, 입니다.(6:34) 내일 은 현실이 아닙니다


사람은 창조자가 아닌데, 오늘 존재하지 않는 내일을 창조하면서 내일의 걱정을 온 몸에 새깁니다. 내일 일을 당겨 오늘 걱정을 고통 속에 문신으로 새깁니다. 온 몸에 피를 흘리며 내일 걱정을 오늘 내 몸에 새깁니다. “죽은 자 때문에 너희의 살에 문신을 하지 말며 무늬를 놓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19:28) ‘문신을 하지 말며 무늬를 놓지 말라는 레위기서 말씀은 다른 종교의 풍습을 따르지 말라는 뜻입니다. 재물에 집착하는 것은 하나님 외에 다른 이방신을 섬기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재물에 집착하는 것은 또 다른 종교를 갖는 것입니다. , 재물, 자본이라는 종교를 따르다가, 잉여자본이 없는 까닭에, 계좌 잔고가 넉넉하지 않은 이유로, 우리 온 몸에 걱정이라는 문신을 새기곤 합니다. 재물을 섬기는 자의 영혼에 깊숙이 그려진 문신은 이 고통 속에 새겨지곤 합니다. 걱정과 고통으로 새겨진 문신 때문에, 얼굴과 온 몸이 어둡습니다.




 

대전에 성심당이라는 제과점이 있습니다. 성심당은 대전역에서 찐빵 가게로 출발했다고 합니다. 창업자 임길순 옹은 1·4후퇴 때 피난민이었는데, 천주교 신부님이 내준 밀가루 두 포대로 역 근처에 천막을 치고 찐빵을 팔았답니다. 성심당에는 오늘 만든 찐빵만 있다고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팔고 남은 찐빵을 평소 보아둔 어려운 가정에 매일 나눠주었기 때문입니다. 먹을 게 없던 시절 남은 찐빵을 가족에게 먹여도 부족했을 것입니다. 찐빵을 어떻게든 남겨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더니데, 막 쪄낸 찐빵만 파는 가게로 소문이 났답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마케팅을 제대로 한 겁니다. 창립 60주년이 된 지금 성심당 가족은 300여명 입니다.

 

소유가 많은 부자가 아니라, 나눔이 커야 부자입니다. 내일을 위해 창고를 짓지 않고, 오늘 이웃들에게 창고를 열어야 부자입니다. 내일 걱정으로 온 몸에 고통스런 문신을 새기지 않고, 오늘 믿음으로 사랑을 새기는 사람에게 빛이 납니다.

 

예수님의 온 몸이 밝았습니다.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17:2) 예수님의 눈이 하나님에게 정향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눈은 재물을 향하지 않고, 하나님에게만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온 몸이 밝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벌 것인가에 대한 지침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광야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 일러주시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는가에 관한 일은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공중의 새를 먹이고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듯, 사람을 먹이고 입히시는 건 하나님의 사업이기 때문에, 성경에는 돈을 어떻게 벌지에 관한 에피소드가 없습니다.

 

성경에는 돈을 어떻게 써야하는지에 관한 에피소드가 많습니다. 사람의 일은 어떻게 버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 입니다. 성심당 창업주 임길순 옹께서는 찐빵으로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를 연구하지 않고, 남은 찐빵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어떻게 벌지를 연구하는 것이 마케팅인데, 마케팅을 하지 않고도 마케팅이 됩니다. 최고의 마케팅은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의를 행하면, 이익이 따라옵니다.(6:33) 바르게 쓰면, 필요한 만큼 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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