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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 나의 교회 _ 왕상15:9~24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7.06.26|조회수81 목록 댓글 0

사람이 경험하는 첫 번째 세계는 자궁입니다. 자궁은 따뜻하고, 안전하고, 충분합니다. 일하지 않아도, 애쓰지 않아도 먹여주고 재워주는 궁전이 자궁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궁을 경험합니다. 모든 사람은 궁전에서 태어난 겁니다.

 

자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태아가 살자면 가장 좋았던 궁전을 벗어나날 수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너무 좋은 세상이지만,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태아는 때가 되면 어머니를 떠나야 합니다. 더 자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궁을 떠나 품에서 자라야 합니다.

 

어머니의 궁에서 어머니의 품으로 자리를 옮겨 사람은 자랍니다. 어머니만큼 자라고, 어머니보다 더 자랍니다. 몸도 어머니보다 더 커지고, 생각도 어머니보다 더 커집니다. 어머니만큼 커지고 어머니보다 더 커지면,


품을 떠나야 합니다. 어머니의 궁을 벗어나고 어머니의 품을 떠나는 것, 어쩌면 어머니도 원하지 않을 어머니의 뜻입니다.

 

유다 왕 '아사'가 어머니의 품을 떠납니다. 아사가 어머니의 품을 떠나는 방식은 따뜻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습니다.


파괴적입니다. 자궁을 찢고, 품을 밀쳐내듯 거칠게 아사는 어머니를 떠납니다.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라 버립니다.(왕상15:13)

 

태후 마아가는 아사에게 어머니였습니다. 아사가 태후 마아가를 파면합니다. 어머니를 파면합니다. 어머니를 파면한 아사는 어머니와 원수가 되었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어쩌면 왕 아사가 어머니 태후를 파면한 역사를 알고 계셨겠습니다.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왔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 나는 아들과 아버지, 딸과 어머니,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서로 다투게 하려고 왔다. 그러므로 사람의 원수는 자기 식구가 될 것이다”(10:34~36)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면 부득이 가족과 원수가 될 것이라 하십니다.

 

부모는 인정해야 합니다. 부모 자신이 자식에게 우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 자궁과 내 품이 자식에게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우상을 포기하지 않는 건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자궁은 이 세상 어떤 궁전보다 평안하고, 엄마 품은 이 세상 어떤 온기보다 따뜻합니다. 벗어나기 힘든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우상은 전체의 부분입니다. 부분을 전체라 여기는 것이 우상입니다. 부모는 가지고 있는 것보다 갖지 못한 것이 더 많습니다. 부모가 가진 것을 다 내주어도 충분히 주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충분하지 않아도 다 내 주었거든, 다 내주고 파면되는 것이 부모의 운명입니다. 엄마와 아빠의 이름은 남아도, 때가 되면 파면되어 그 역할을 놓는 것이 또 부모의 복입니다.

 

더 나아가 아이가 성인이 되면 부모를 더 이상 필요치 않을 뿐만 아니라, 부모의 명성과 재산, 나아가 부모의 신념마저 대단치 않게 여겨야 합니다.


아사 왕은 어머니의 신념마저 뛰어넘습니다. 어머니의 신념이라 할 수 있는 종교 제의를 없애버립니다. 그것이 성전의 창기(Temple prostitute)라 할 수 있는 남색하는 자를 쫓아내는 등 과감한 종교개혁을 단행한 것입니다.(왕상15:12) 어머니를 뛰어 넘어야 합니다.

 

저에게도 어머니는 너무 좋은 분이십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표정이 있습니다. 먼저 하늘로 가신 형이 병원에 있을 때입니다. 어머니는 형을 수발하기 위해 병원에서 숙식을 하시며 몹시 지쳐있었습니다. 병원 구석에 보호자들을 위한 식당에서 밥을 차려주시면서, 가만히 저를 쳐다보셨습니다. 차린 음식이 제 입에 들어가는 걸 쳐다보시면서, 가문 논에 물 들어가는 것처럼 오지다고 하셨습니다. 아들 병수발로 찌든 얼굴에 그어지던 한 줄기 웃음을 잊을 수 없습니다. 어머니의 수고를 덜어드리지 못하고, 오히려 피곤에 젼 어머니의 손발을 움직이게 해서 밥을 먹기만 했는데도 웃어주셨습니다. 어머니는 하나님 같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여느 고등종교와 비교해도 어머니의 교리는 뒤지지 않습니다.

 

그 어머니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교회는 자궁이었고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한 곳이었지만, 어머니를 떠나 더 좋은 자궁과 더 좋은 품을 지닌 교회를 이루는 것이, 또 모든 어머니의 뜻입니다. 어쩌면 어머니 자신은 원하지 않을, 어머니의 뜻입니다.

 

아사는 어머니 같은 정치와 종교를 개혁하고 뛰어넘은 괜찮은 왕이었겠습니다. 역사가는 아사의 이런 행동을 후술하면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한 왕이었다고 평가합니다.(왕상15:11)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 구원입니다. 어머니를 사랑하되, 어머니를 극복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 자식들을 사랑하되 자식들로 부모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 부모의 역할이 종료되었을 때, 허전하지 않고 기쁘게 여생을 정돈해 갈 수 있는 것이 부모의 영성이겠습니다.

 

아사는 부모를 뛰어넘을 만큼, 괜찮은 개혁가였지만 완전하진 않았습니다.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습니다.(왕상15:14) 산당은 나쁜 의미에서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해 만들었지만, 솔로몬이 수입한 온갖 잡신들이 산당에 모셔져 있어서, 사람들은 잡신들을 하나님인양 섬겼습니다. 아사 왕은 자기 궁전과 성전을 개혁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웃들과 백성들에게 스며들어 있는 우상을 제거하진 못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하다 하여, 완전한 건 아닙니다.


온전하기를 구합니다. 나아가 완전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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