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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왔던 길, 함께 가는 길 _ 왕상19:1~18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7.06.26|조회수120 목록 댓글 0

엘리야 혼자 아합 왕을 찾아가 전 국가적인 가뭄을 예언했습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왕상17:1)

 

엘리야 혼자 종교지도자 850명과 맞짱을 뜹니다.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아오게 하소서”(왕상18:19)

 

엘리야는 혼자, 악한 권력과 충돌하고, 악한 권력을 지탱하는 종교권력과 싸웁니다. 외로운 싸움입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왕상19:10)

 

엘리야는 오직 나만 남았다고 기도합니다. 반복해서 오직 나만 남았음을 강조합니다.(왕상19:14)

 

누가 국가권력에 맞서 재앙을 말하며, 누가 종교지도자들에 맞서 민초들과 유리되기를 바라겠습니까. 국가 권력이 악한 줄 알아도 종교 권력이 어리석은 줄 알아도, 악한 것을 악하다고 어리석은 것을 어리석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옳은 것을 옳다, 아닌 것을 아니다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5:37)

 

옳은 것을 옳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사람의 운명은 고단합니다. 죽을 것 같습니다.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나이다”(왕상19:4) 죽기를 소원하는 기도를 하고 엘리야는 죽은 듯 쓰러졌습니다. 죽은 듯 잠들어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지 않으면 살아있는 사람의 호흡을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 엘리야는 죽은 듯 쓰러져있었습니다.



Ferdinand Bol (1616~1680), Elijah Fed by an Angel (1660-63)

 


들리지도 않을 만큼 가늘디가는 호흡만 남아있었을 엘리야에게 소리가 있었습니다.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왕상19:7)

 

국가권력을 상대해야 했고 종교지도자들에게 시달리며, 치열하게 달려오다가 죽을 만큼 기진해 있는데, 길이 끝나지 않았고, 가야할 길이 있다고 하십니다. 끝나지 않은 길이 있습니다. ‘아직 가야할 길이 있습니다.


일어나서 먹으라 하십니다. 엘리야가 일어나서 먹습니다. 길을 가기 위해서였겠지요. , 배도 고팠겠지요. 길도 가야하고, 배도 고픕니다. 엘리야가 일어나서 먹고 길을 갑니다.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왕상19:8) 모세가 이집트 파라오와 맞짱을 뜨고, 비다 가운데로 갈라진 길을 통과하고, 사막으로 난 보이지 않는 길을 가기 전 올랐던 호렙산에 닿았습니다.(19:20)

 

호렙산에서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묻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왕상19:9) 하나님께서 일어나 먹고 가라고 하셨잖아요. 하나님께서 일어나 먹고 가라고 하셨으면서, 왜 여기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엘리야의 대답 속에는,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히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라는 엘리야의 대답 속에는, 원망과 투정이 배어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아십니다. 내가 하나님을 부르기 전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셔서, 하나님께서 알고 부르신 사람이 악한 권력 앞에 서고 타락한 종교인들과 한 상에서 먹지 않았는데,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물으시면, 원망과 투정 없이 대답할 수 없지요.

 

교회가 됐습니다. 우리가 교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실 교회가 있을 줄 믿고, 깃발을 꽂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목사가 흔들려서 깃발은 자주 흔들렸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습니다. 목사는 지금도 흔들립니다. 목사가 깃발이어선 안 되는 이유입니다.

 

목사 혼자 가서는 안 되는 길입니다. 함께 가야할 길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어떻게 혼자 국가 권력에 맞서고,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밥을 먹지 않고 견딜 수 있었을까요?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19:18) 엘리야 혼자 국가 권력과 악한 권력에 유착된 종교지도자들과 맞선 게 아니라, 조직화되지 않은 칠천 명이 있었습니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고, 바알에게 입맞추지 않는 칠천 명이 있었습니다. 조직화되지 않아 보이지 않아도, 있었습니다. 엘리야처럼 유별나지 않았어도, 있었습니다.

 

엘리야도 혼자 갈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엘리야도 혼자서는 견딜 수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배후 세력이 있었습니다. 조직되지 않은 세력이 엘리야 등 뒤에 있었습니다. 깃발이 있고, 깃발 아래 조직된 교회가 있고, 또 조직되지 않았지만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고 입맞추지 아니한 사람들이 함께 있습니다.

 

함께 갈 길입니다. 애초에 혼자 걸은 길도 아니었습니다. 함께 걸었던 것을, 엘리야도 이제 압니다. 엘리야는 혼자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칠천 명 중 한 명이었습니다.

 

칠천 명과 나란히 걷는 길이어서 내 걸음이 흔들리면 칠천 대오가 흔들릴 것이라, 바짝 정신 차리겠습니다. 칠천 명과 더불어 가는 길이어서 내 무릎이 꺾이면 칠천 명이 돌아가며 엎고 갈 길이라, 안심하고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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