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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살이 _ 민28:1~10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7.08.13|조회수234 목록 댓글 0

1.

의례로 남아있는 제사는 없습니다. 무수히 많은 제사 의례가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제물이 되셨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9:12) 날마다, 안식일에, 매월 첫 날에, 주요 절기에 드리던 제사들이 예수께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완성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자리에, 짐승의 피가 흐르지 않는 이유입니다.


2.

하나님은 죽은 짐승을 제물로 받지 않으십니다. 살아있는 사람을 제물로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하나님께서는 예배드리는 이들에게 죽은 짐승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을 요청하십니다. ‘거룩한 산 제물’이란 ‘살림살이’를 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살아있는 것들을 살리는 인생입니다. 살아있으되 죽음 같은 일상을 사는 이들에게 생기를 불어주는 삶(살이)이 ‘살림살이’입니다.


3.

헌금은 제물이 아닙니다. 헌금을 드리는 사람이 제물입니다. 헌금을 드릴 수 없는 사람도 제물입니다. 헌금을 드리든, 헌금을 드릴 수 없든 죽은 것 같은 누군가를 살게 하는 삶을 사는 사람, 곧 살림살이를 잘 하는 사람이 제물입니다.


4.

예수가 제물이셨습니다. 죽은 것 같은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살게 하는 삶을 예수께서는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살림살이를 잘하셨습니다. 피부병에 걸려 마을에서 격리된 사람, 부인병에 걸려 사람들과 접촉할 수 없는 사람,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 사람의 수에 들지 않는 어린 아이들, 남편이 없는 과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은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죽은 것이나 진배없는 사람들에게, 여느 사람들이 누리는 일상을 살게 해주신 이가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셨습니다.



운보 김기창, '예수의 생애' 중


5.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요. 그리스도인은 당시에 별스럽게 믿는 사람들을 비꼬는 말이었습니다.(행11:26) 우리말로는 ‘예수쟁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번역이겠습니다. 요새 ‘예수쟁이’라 비꼬는 말을 듣기 어렵습니다. 세련되고, 건전한 종교인으로 처세하는 것만으로 스스로에게 후한 점수를 주기 때문일 겁니다. 내 별스러움 때문에 나를 예수쟁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다면, 옛날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이 받았던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 별칭입니다. 나는 이름을 잃어 버렸습니다.


6.

우리가 함께 예수를 믿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교회’라고 하지요. 바울이 ‘거룩한 산 제물’이 되기를 요청한 대상은 로마에 있는 교회였습니다. 누군가를 특정하지 않고, ‘너희’라 부르며 교회를 이루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산 제물’로 부르고 있으니까요. 개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라기보다 ‘교회’에게 ‘거룩한 산 제물’이 될 것을 요청합니다.


7.

우리가 산 제물입니다. 우리 교회가 거룩한 산 제물입니다. 나는 예수쟁이답지 않은 그리스도인입니다만, 우리 교회가 산 제물이면, 적어도 바울의 요구에는 부합하는 예수쟁이입니다. 나는 함량미달 그리스도인이지만, 교회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목사는 약점이 많지만, 교회는 흠 없는 제물이어야 합니다. 저는 이 신비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부분적으로 흠이 있는데, 부분의 합이 거룩해지는 것을 신비라고 밖에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8.

예수께서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까닭에, 의례로서 제사를 드리지 않지만, 의미로서 제사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날마다 아침과 저녁으로 드렸던 제사를 상(常)번제라고 하는데요, 불로 태우는 제사였습니다. 불로 태우는 제사 화제(火祭)는 하나님께 향기를 바치는 것이었습니다.(민28:6) 날마다 드렸던 제사의 의미를 되살린다면, ‘거룩한 산 제물’에도 향기가 나겠습니다. 말과 행실과 표정에 향기가 배어있어야 ‘거룩한 산 제물’입니다.


9.

2주일 동안 카페 화장실 청소를 못했습니다. 핑계를 대자면 대상포진으로 오른손에 힘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냄새가 나는데, 손쓰지 못했습니다. 며칠 전에야 오른손에 힘이 들어가서, 작정하고 청소를 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쓰는 공중 화장실의 보름짜리 오줌버캐를 닦는 것은 유쾌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마땅히 목사가 할 일입니다. 성전도 성막도 따로 없는 시대에, 교회가 사용하는 모든 공간이 성소이고, 성소를 관리하는 일은 경작지가 따로 없는 레위인들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민1:51~53) 교회의 목사는 따로 경제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 레위인과 닮았습니다. 성소를 정결하게 관리하는 일이 레위인의 일이었다면, 교회가 사용하는 화장실을 정결하게 하는 일은 목사의 일이겠습니다. 보름 만에 변기를 닦으면서, 매일 닦으면 나쁜 냄새가 나지 않을 거란 당연한 깨달음이 왔습니다. 날마다 드렸던 향기 나는 상번제를 준비하는 일이 레위인의 일이었다면, 날마다 화장실을 향기 나게 하는 건 목사의 일이겠습니다. 목사의 살림살이 중 하나겠습니다.


10.

대단한 일을 해내지 못해도, 당연한 일을 할 때, 향기 나는 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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