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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안보 _ 렘5:20~31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7.10.01|조회수116 목록 댓글 0

트럼프와 김정은의 말이 위험하고 위태합니다. 위험하고 위태한 말들 때문에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까 염려되기도 합니다. 예레미야도 전쟁을 염려합니다. 아니, 예레미야는 전쟁을 확신하고, 친척들에게 피난을 권합니다. “베냐민 자손들아 예루살렘 가운데로부터 피난하라”(렘6:1)


미켈란젤로, '예레미야', 1508-1512



예레미야가 전쟁을 확신하는 데엔 근거가 있습니다. “너희 집들에 속임이 가득하도다 그러므로 너희가 번창하고 거부가 되어 살지고 윤택하며 또 행위가 심히 악하여 자기 이익을 얻으려고 송사 곧 고아의 송사를 공정하게 하지 아니하며 빈민의 재판을 공정하게 판결하지 아니하니 내가 이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같은 나라에 보복하지 아니하겠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5:27~29) 거짓을 행하는 자들이 부자가 되고, 고아의 송사와 빈민의 재판이 공정하지 않은 까닭에 예루살렘은 전쟁의 화염을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전쟁을 막고자 한다면, 트럼프와 김정은의 말을 분석하기보다, 거짓으로 부자가 된 자들의 부당이익을 환수해 경제정의가 제도화 되도록 하며, 경찰과 검찰과 법관이 바르게 수사하고 공정하게 재판하도록 사정기관과 법원을 개혁해야 합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북한과 미국에 책임을 묻기 전에 우리 사회에 경제 정의와 사법정의가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신학적으로 안보는 외교를 잘한다고 해서 확보되지 않습니다. 신학적으로 안보는 비싸고 성능 좋은 무기를 갖춘다고 해서 확립되는 게 아닙니다. 신학적으로 안보는 정의로운 경제와 공정한 재판이 제도화될 때 구축됩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속이는 자들이 거부가 되며 고아와 빈민들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나라를 심판하겠다고 하시는데, 정작 선지자들은 거꾸로 이야기 합니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렘6:14) 평강이 깃들 수 없는 곳에서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나쁜 부자와 부정한 판사들이 듣기 좋아할만한 평강을 빌어주었습니다.


경제정의가 무너진 것보다 공정한 재판이 시행되지 않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 무섭 고 놀라운 일이 이것입니다.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 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렘5:30~31) 거짓으로 평강을 예언하는 선지자들 때문에 사람들이 회개할 기회를 갖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회개할 기회를 갖지 못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평강을 말하는 선지자들이 선제 타격을 운운하는 김정은보다, 전멸을 내뱉는 트럼프보다 위험합니다.


선지자들이 거짓말로 평강을 선포하면서, 또 심각한 거짓말을 보탭니다. 바알의 흔적이 가득한 잡신들의 터를 성전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렘7:4) 우리 시대에도 교회에서 가장 많이 통용되는 거짓말입니다. 어떤 건물도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성전이 되지 못합니다. 아무리 큰 성전이라도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다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성전을 의미 짓는다면, 성전은 높크게 세운 건물 따위가 아니라 거룩한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우리가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이 성전이라면, 우리가 있는 곳이 곧 성전입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높은 산이나 거친 들이나 우리가 있는 곳이 성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까요.


또, 하나님은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 속에 계십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하나님께서 계시니,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 하신 것은 속마음에 있다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 하나님나라가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전쟁을 치르고 난 후, 베트남에선 추석에 전쟁고아들을 위해 마을에서 음식을 준비해주고 선물도 주는 풍습이 생겼다고 합니다. 요즈음엔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특별히 더 챙기는 명절로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6월 1일이 베트남 어린이 날이긴 한데, 어린이들이 6월 1일보다 추석을 더 기다린다고 합니다. 한국의 추석이 가족 중심이라면, 베트남의 추석은 마을 중심입니다. 한국에선 돌아가신 조상 중심이라면, 베트남에선 살아남은 고아와 빈민 중심입니다.


신학적으로 안보는 미사일과 무기를 수입해서 보장되는 게 아니라, 우리 동네에 사는 고아와 빈민을 지킴으로 확립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는 마을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 있습니다. 관계 속에 있는 하나님나라는 전쟁으로도 파괴되지 않습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대하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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