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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_ 렘23:1~6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7.10.29|조회수165 목록 댓글 0

예레미야는 국가의 멸망을 말했습니다. 왕조의 멸망이 아니라 국가의 멸망을 예언했습니다. 백성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예언입니다. 국가가 망하고, 백성들이 흩어지게 된 이유가 지도자들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목장의 양떼를 멸하며 흩어지게 하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렘23:1) 왕족과 귀족들의 지지도 받을 수 없습니다. 어떤 지지기반 없이도 하나님의 뜻을 말해야 하는 것이 예언자의 숙명입니다. 예레미야가 가감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토했기에, 심판 이후에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키십니다. “내가 내 양떼의 남은 것을 그 몰려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잃어버리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23:3~4) 좋은 목자를 세워 백성들을 일으키겠다 하십니다.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렘23:5)


다윗의 혈맥을 잇는 사람이 지도자가 될 거라 생각했을 법합니다. 그러나 다윗 가문은 마지막 왕 고니야가 바빌로니아에 끌려간 이후에 사실상 사라집니다.(렘22:24) 실제로 유대 땅에서 다윗 왕조는 복원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키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혈맥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영맥에 관한 것입니다. 후대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했고, ‘남자를 알지 못하’는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를 다윗의 후손이라 불렀습니다.(눅1:34)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마21:9)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자에게서 예수께서 태어나셨다는 것은 예수가 혈통상 다윗의 후손이 아니라는 것이요, 그럼에도 사람들이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는 것은 예수야말로 다윗의 영맥을 잇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영맥 즉, 성령의 맥은 혈통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족보를 따라 유전되는 단백질 고리가 아니고, 성령은 족보와 신화를 따라 전승되는 것도 아닙니다.(딤전1:4) 성령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땅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덮고 있는 하나님의 행동입니다.(창1:2) 성령은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과 함께 하는 사람이 물려받는 ‘위대한 유산’입니다. ‘위대한 유산’은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세습되는 게 아닙니다. 족보의 신화를 부정하는 자라야 영맥의 능선을 걸을 수 있습니다.


김삼환은 성령을 부정하며 믿음을 저버렸고, 김하나는 ‘비대한’ 엘리의 몸을 물려받았습니다.(삼상4:18)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 종교개혁기념 주일을 앞두고, 500년을 성큼 뒷걸음쳐 저들은 교황이 되었습니다. 단언컨대 저들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일으키시기 위해 세운 지도자가 아닙니다.



교황의 교서를 불태우는 루터



“저는 농부의 아들이자 성서 박사이며 교황의 적임을 고백합니다” 500년 전 마틴 루터(Martin Luther)의 말입니다. 마틴 루터를 따라 저는 개신교회의 교황이 돼버린 김삼환과 교황의 교권을 물려받으려는 김하나의 ‘적’임을 고백합니다. 옛날 유대에서 악하고 어리석은 지도자들 때문에 백성들이 포로가 됐던 것처럼, 아둔하고 비대한 목사들 때문에 교회가 자본과 권력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다시 좋은 지도자를 세워 교회를 세우시고 세상을 회복하십니다. 좋은 지도자가 세워졌을 때, 그가 좋은 지도자인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질문이 틀렸습니다. 과연 다윗의 자손이라 불릴만한 좋은 지도자가 등장하기를 기대하는 건 믿음이 아닙니다. 좋은 지도자의 등장을 기대하는 것은 왜곡된 메시아사상입니다.


다윗의 자손 같은 좋은 지도자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다윗을 초월하는 좋은 지도자가 되기를 소원하는 것이 건강한 신앙입니다. 옛날 드보라나 기드온처럼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지도자가 나를 구원해주길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성령을 주셔서 사사와 같은 지도자가 되기를 소원하는 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11:13)


성령을 구하고 성령을 찾고 성령을 얻기 위해 문을 두드리라 하십니다. 성령에 충만했던 ‘사사’들처럼 우리 동네 사람들을 모종의 압제 속에서 구원하는 사람이 영맥을 잇는 사람입니다.(삿14:6)


어제 토요일 밤 9시 50분에 검정고시 수업이 끝났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주말 근무를 하고 저녁 식사를 거른 채 베트남, 캄보디아에서 오신 이주민들을 위해 교사로 봉사한 청년의 전화였습니다. 나그네를 위해 기꺼이 좋은 목자가 된 청년에게 ‘위대한 유산’이 상속됩니다.


나를 구원할 메시아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지극히 작은 한 사람을 구원하는 교회의 존재가 우리 믿음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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