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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엔 희망 따위 없다 _ 시127:1~2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7.12.03|조회수84 목록 댓글 0

기도의 자리는 결핍의 자리입니다. 땅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여기니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 고백하고,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뜻의 성취를 탄원하고, 일용할 양식이 없기 때문에 밥을 달라 간청하고, 극심한 채무에 시달리기 때문에 탕감 받기를 기대합니다.(마6:6~9) 기도의 다른 말은 희망 혹은 소망이겠습니다. 희망을 갖는다는 건, 희망하는 대상을 갖지 못하다는 반증입니다. 희망을 소유한 자는 소유한 게 없는 사람입니다. ‘죽어도 원이 없다’는 말을 관용어로 쓰지요.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게 좋은 겁니다. 충분히 소유한 사람들에겐 희망이 없습니다. 희망이 없다는 것은 결핍도 없다는 겁니다.


소유한 사람들은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두렵습니다. 아무 것도 갖지 못한 사람들이 결핍의 이유를 소유한 사람들 탓으로 돌릴까 두려워한다. 그렇게 희망은 생산되곤 합니다. 희망은 값없이 살 수 있는 것이어서, 가난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소유할 수 있습니다. 희망을 소유한 까닭에 하나님도 없고, 뜻도 없고, 빚만 있는 사람들도 숨을 쉬며 살 수 있습니다. 요샛말로 이런 걸 ‘희망고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시인 정호승은 희망을 거절합니다.


희망에는 희망이 없다.

희망은 기쁨보다 분노에 가깝다.

나는 절망을 통하여 희망을 가졌을 뿐

희망을 통하여 희망을 가져본 적이 없다

- 정호승,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예수께서는 희망에 관해 말씀하셨지만, 희망으로 사람들을 고문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천국을 희망하는 데에 그치지 않으시고, 천국을 살게 하셨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천국이 임하였다고 하셨습니다.(눅17:21)


땅에서 천국을 희망하며 기도했다면, 기도는 응답되고 천국은 임해야 합니다. 천국이 임하기를 기도했고, 또 기도하고, 더 기도한다면, 기도하고 기도하며 기도만 하고 있다면, 일용할 양식이 없는 배고픈 자가 주린 배를 움켜잡고 죽어가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기도하고 기도하며 기도만 하는 것이 중언부언입니다.(마6:7)


결핍의 근본에 땅이 있습니다. 땅을 소유하지 못한 자가 희망을 소유합니다. 희망을 소유한 자에겐 땅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우리가 땅이라 하십니다.(엡1:11) 땅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 우리가 땅이 되는 것이 여기에서 하나님나라를 성취하는 방식입니다.


땅이 된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는 충만으로 기능합니다.(엡1:23) 교회가 세워지기 전에 예수께서 배고픈 사람들에게 밥을 주었고, 아픈 사람을 치료하셨고, 죄인으로 정죄 받는 사람들을 옹호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배고픈 사람, 아픈 사람, 정죄 받는 사람, 여성, 이방인, 어린 아이 등, 당대에 희망 외엔 소유한 게 없는 사람들에게 친히 천국이 되셨습니다.


예수께서 만물 속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실 때, 만물 속에서 희망은 사라졌습니다. 배고픈 사람들이 밥을 먹고, 아픈 사람들이 치료받고, 정죄 받던 사람들의 옹호되고, 여성, 이방인, 어린 아이가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죽어도 원이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는 희망 밖에 소유한 것이 없던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사라지게 하셨습니다. 죽어도 원이 없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으로서 희망 밖에 가진 게 없는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도려내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도려내지 못한 희망 때문에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간절한 희망 때문에 뒤척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희망하는 자는 잠들지 못합니다. 어둠이 지나고 동이 트도록 기도하고 기도하며, 새벽을 깨우겠다고 합니다.(시57:8) 그러나 새벽을 깨운다해도 고통으로 막막한 밤은 쉼 없이 찾아옵니다.(욥30:17) 오늘 새벽을 깨워도 오늘이 가기 전에 밤이 밀려듭니다. 새벽을 깨우겠다는 간절한 희망은 그래서 고문입니다.


새벽을 깨울 만큼 간절한 희망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잠을 주십니다.(시127:2) 밤을 이기는 방법은 새벽까지 깨어있는 것이 아니라, 자는 것입니다. 시경에 ‘잠으로 밤을 이긴다’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잠을 자야지 선언하고 잠들 수 있는 건 아니지요. 잠들 수 없는 간절한 희망이 제거되어야 잠들 수 있습니다.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관계를 맺으며 예수님은 희망을 제거하셨습니다. 죽어도 원이 없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희망을 제거하고 천국을 소유토록 하셨습니다. 윌리엄 폴 영의 ‘갈림길’ 중 한 줄입니다. “꿈도 소망도 없는 편안한 잠에 빠져들었다.”


천국엔 희망 따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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