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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사랑입니다 _ 눅1:5~20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7.12.31|조회수96 목록 댓글 0

저는 의심이 많습니다.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겠다는 도마가 좋습니다. 렘브란트의 그림 속 도마가 좋고,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에 등장하는 도마도 좋습니다. 의심하고 회의하고 질문을 던지는 도마가 좋습니다. 그래서였는지, 대학 시절 선교단체에 있을 때, 의심 많고 기독교에 도전적인 후배들은 제게 찾아오곤 했습니다. 믿지만 의심했고, 조직신학을 공부하지만 회의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저는 계산을 합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돈키호테처럼 덤비지 않습니다. 예산을 따져보고 견적을 받아보고 할 수 없으면, 하지 않습니다. 하지 않는 걸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적이면서, 실현하지 못하는 사람은 오랫동안 부끄러움을 견뎌야 합니다. 부끄러움을 견딜지언정 소망을 성취하기 위해 무리하지 않습니다. 내가 갖고 있는 소망은 늘 타협에 뒷덜미를 잡혀 앞으로 가지 못합니다.


그래도 믿음과 소망이 있습니다. 의심하고 회의하지만 믿음이 있습니다. 현실에 막혀 낙심 할 때도 있지만 소망이 있습니다. 바울은 믿음과 소망을 언급하면서, 이 세상 끝까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믿음과 소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의심해도 믿음이 없는 게 아니요, 타협한다 해서 소망이 끊기는 건 아닙니다. 바울은 믿음, 소망과 함께 사랑을 말합니다. 바울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내 안에서 사랑을 찾아봅니다. 나를 만나는 사람이 나를 통해 경험하는 사랑을 찾아봅니다. 의심해도 믿음은 사라지지 않았고, 타협해도 소망은 끊어지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설교하지만 사랑이 또렷이 보이질 않습니다. 사랑이 보이질 않습니다. 의심하는 믿음도 있고, 타협하는 소망도 있는데, 사랑은 부득이한 한계 속에서나마 보이질 않습니다. 


사가랴는 제사장이었지만 믿음이 없다고 하나님에게 혼납니다. 천사가 사가랴에게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진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 하셨을 때, 사가랴는 의심합니다.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눅1:18) 늙은 남편과 나이가 많은 아내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날 수 없다고 사가랴는 판단했습니다. 사가랴의 질문은 이성적인 것이었지만, 불신이라 책망 받습니다.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눅1:20) 사가랴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사가랴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까닭은 소망을 가질만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소망은 엮여 있습니다. 자신은 늙었고, 아내는 나이가 많은 상황에서 자식을 낳고자하는 소망은 자리 잡을 수 없습니다. 또, 에돔 출신의 헤롯이 왕이 되어 폭정으로 통치하며, 헤롯 뒤엔 로마 제국이 있어 갑갑한 때였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소망을 갖기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소망을 말하기 어려운 때엔, 믿음도 사라집니다. 믿음이 사라지고 소망도 없는 때가 있습니다. 제사장 가문의 사가랴와 아론의 후손인 엘리사벳 사이에서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지닌 아들이 태어날 것입니다.(눅1:13,15,17) 그러나, 사가랴는 믿을 수 없습니다. 늙고 나이가 많은 부부 사이에서 어떻게 자식이 태어나겠습니까.(눅1:18)


소망을 말할 수 없고, 믿음도 사라졌지만 사가랴에겐 사랑이 있었습니다. 사가랴의 이야기 속에 사랑이라는 단어는 보이지 않지만, 행간을 잃어보면 사랑이 있습니다. 사가랴가 아들을 낳은 까닭은, 늙은 사가랴와 나이 많은 엘리사벳이 서로의 몸을 안았기 때문입니다. 또, 사가랴는 관습을 따라 성전에서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믿음도 없고 소망도 끊겼지만, 성전 입구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전통을 따라 기도하는 차례를 지켰습니다. 사가랴의 사랑은 표현되지 않아 행간을 헤집고 읽어야 하는, 그런 사랑입니다.

 

그래도,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가랴의 믿음을 보시고 그와 역사의 소망을 성취하신게 아니라, 하나님은 믿음 없는 사람을 통해 잃어버린 소망을 성취하셨습니다. “때가 되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눅1:20)


사가랴에겐 믿음이 없었지만, 사가랴는 소망을 잃어버렸지만, 자식을 낳지 못한 아내의 몸을 사랑했고, 소박한 사람들의 신심을 지키기 위해 자리를 지켰습니다. 가족과 이웃을 향한 의리를 다했습니다. 사가랴의 사랑은 푸석푸석하게 말라버린 오래된 카스텔라 빵 같아서 촉촉하지도 않고 맛도 없습니다. 그래도 사랑입니다. 매력적이지 않지만 표현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사랑입니다.


새해엔 확실한 믿음이 있을까요. 뚜렷한 소망이 있을까요. 꼭 그렇진 않을 겁니다. 그래도 사랑하겠습니다. 푸석푸석하게라도 사랑하겠습니다. 그래도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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