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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땅 _ 시104:1~5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8.04.22|조회수58 목록 댓글 1

바빌로니아로 끌려온 노예들은 성전에 갈 수 없습니다. 갈 수 있다 하더라도 성전이 무너졌기 때문에 제사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성전이 없어 제사를 드릴 수 없었기 때문에 기도 외에 하나님께 닿을 길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디자인한 건물과 제사장이 집전하는 제사 없이, 오직 묵상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의 묵상meditation을 가상히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로다”(시104:34)


옛날 유대인들은 성전을 하나님께서 현존하시는 공간으로 여겼습니다. B.C.587년에 성전이 무너졌을 때, 도대체 하나님께서 어디에 계시는지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유대 조상들은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에서 큰 날개 모양의 조각상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상징한다고 상상했기 때문에, 성전 벽뿐만 아니라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파괴된 성전 터를 보고 하나님의 죽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재, 하나님의 죽음이라는 사건은 바빌로니아로 끌려온 노예에게 엄청난 고민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지, 하나님은 과연 살아 계신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이었겠지요. 노예는 채찍 맞은 등에 내리쬐는 빛을 받으며, 하나님의 온기를 경험합니다. 노예는 굽은 허리를 펴기 위해 마르둑 신전을 쳐다보며, 신전 꼭대기 위에 하늘을 보게 됩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위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로 옷 입으셨나이다 주께서 옷을 입음 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 같이 치시며”(시104:2) 하나님의 부재와 하나님의 죽음을 놓고 고민하던 노예는 일하는 현장에서 맨등으로 볕을 받으며, 신전 꼭대기 주눅들었다가 문득 깨닫습니다. 하나님이라면, 진짜 하나님이라면, 하나님께서 성전 안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었음을 깨닫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설계한 성전 안에, 성전 속 조각상으로 갇혀 계실 리 없는 거지요. 빛은 하나님의 옷이요, 하늘은 하나님의 장막이라 깨닫습니다. 성전이 무너지고서야,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바로 이해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백향목으로 세워지고 벽돌로 쌓아 올린 성전에 계신 것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온 세상에 계십니다. 바빌로니아에도 계십니다. 성전 벽이 허물어졌다 해서 하나님이 쓰러진 게 아닙니다. 지성소 그룹cherubim이 파괴되었다 해서 하나님이 죽은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라면, 어디에서도 성전이 재건 될 것입니다. 시인이 된 노예는 물 위에 기둥을 세워 누각을 지으시는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beams를 얹으시며”(시104:3a) 여기에서 물은 수상가옥을 얹을 수 있는 물이 아닙니다. 강바닥에 나무 기둥을 세울 수 있는 그런 물이 아닙니다. 물은 구약성경에서 상서롭지 않은 상징입니다. 무서운 상징입니다. 노아 시대에 물은 섬뜩한 것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기도하기도 합니다.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시104:9) 물이 땅의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도록 하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속에는 물에 대한 무섬증이 녹아 있겠지요. 시인은 물이 상서롭지 못하고 무서운 대상이지만, 시인은 하나님을 의지해 자신의 무섬증을 극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물 위에 누각을 지으실 수 있다고 선언하며, 물 위에 휩쓸린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계시니 흔들리지 않는 땅을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땅에 기초를 놓으사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시104:5) 물 위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땅을 살 수 있습니다. 노아가 그랬습니다. 끔찍한 물이 온 땅을 덮었을 때에도, 하나님은 노아에게 땅을 딛게 해주셨습니다. 물 위에 누각을 짓게 하셨습니다. 노아에게 흐르는 땅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일상이 흔들리는 거 같습니다. 일상이 파괴될까 염려됩니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과 동떨어져 사는 거 같습니다. 당연히 묻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지, 과연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안정한 직장을 다니거나 떠나고, 아픈 몸을 끌고, 아무리 일해도 줄지 않는 대출을 껴안고, 새로운 만남은 설레기보다 의심되고, 나그네 같은 삶은 여전히 고단하고, 장애는 극복되기보다 고착되고, 시도하는 사업은 불확실합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히 살아 계시다는데, 일상은 항상 흔들립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사이에서, 혹은 시리아 아래에서, 그 거대한 문명 사이에서, 흔들렸습니다. 흔들리지 않을 때가 없었습니다. 흔들리며 바빌로니아 땅까지 옮겨졌습니다. 땅도 흔들렸습니다. 다행히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성전이 없는 까닭에 하나님을 묵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의 묵상을 가상히 여기시기를”(시104:34) 하나님을 묵상하고서야, 비로소 바빌로니아마저 하나님나라임을 깨닫습니다. 물 위에도 하나님의 누각이 있습니다. 노아가 심판 중에도 방주에서 흐르는 땅을 딛고 살았던 것처럼, 우리네 일상도,

흔들리는 게 아니라, 흐르는 겁니다. 흐르는 땅이 약속하신 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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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요셉 김영민 | 작성시간 18.04.23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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