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부루마블 Blue Marble _ 신12:1~19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8.05.27|조회수428 목록 댓글 0

고향 광주에 사직공원이 있었습니다. 본래 사직공원은 사직단이었습니다. 땅신(社)과 곡식신(織)에게 제사 드리던 제단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사직(社稷)은 종묘와 함께 옛날 조선을 떠받치던 두 기둥 중 하나입니다. 조선은 농업을 핵심 산업으로 삼았기에 땅 신과 곡식 신에게 제사 드리는 건 대단히 중요한 국가 의례였습니다. 분명 사직단이 있었을 텐데, 제게는 동물원만 기억납니다. 사직단이 있던 곳에 동물원을 만들고, 이름도 사직공원이라 부른 것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이데올로기를 파괴하려는 의도였겠습니다. 일본제국은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사직단을 사직공원으로 만들어 조선의 왕과 신이 음식을 먹던 자리를 짐승들의 배설물이 넘치는 자리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나 농사와 관련된 신이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도 ‘아세라’가 있었습니다. 아세라는 다산 및 식물의 여신입니다. 성경은 토착신들을 우상이라 단언합니다. 다산을 소원하며, 풍년을 바라며 아세라에게 제사드리는 것이 그닥 나쁜 행동일까 싶은데, 모세는 아세라상을 깨뜨리고, 아세라에게 제사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제사드려선 안된다고 합니다.(신12:3~4) 성서의 배경이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한반도였다면, 조선의 종묘와 사직도 파괴되어야 할 우상으로 평가되었을 것입니다. 형상을 지닌 어떤 것도 하나님을 대체할 수 없으니까요.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방식엔 특별함이 있습니다. “너희와 너희의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도 그리할지니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음이니라(신12:12) 하나님은 함께 즐거워하는 제사를 요청하십니다. 제물을 어떤 신에게 바치느냐가 아니라, 제사 드리는 사람들이 함께 즐거워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제사들 드리며 함께 즐거워하라는 것은 함께 제물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는 네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함께 그것을 먹고 또 네 손으로 수고한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되 너는 삼가 네 땅에 거주하는 동안에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지니라(신12:18~19) 함께 먹는 것이 제사의 핵심입니다. 제사보다 젯밥이 중하다는 것입니다. 젯밥을 함께 나누는 것이야말로 제사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인하11살와 준하10살가 부루마블Blue Marble이라는 보드게임을 했나봅니다. 게임이 끝났는데, 준하가 울고 있습니다. 누나가 땅을 많이 샀고, 준하는 누나의 땅에 걸리는 바람에 돈을 내야했고, 마지막에는 서울에 걸려서 200만원을 내야하는데, 150만원 밖에 없어서 파산을 했기 때문입니다. 부루마블의 규칙은 주사위를 던져 어떤 도시에 닿으면 돈을 주고 도시를 살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내가 산 도시에 들어오면, 돈을 받습니다. 도시를 사고, 돈을 벌기 위해 주사위를 던집니다. 나름대로 게임이 전술이 있겠지만, 결국 주사위가 중요합니다. 주사위를 잘 던지지 못해 게임에 진 준하가 울면서 밥도 안 먹겠다고 합니다. 우는 준하와 난처해하는 인하에게 부루마블에 관해 일장 연설을 했습니다.


“부루마블은 정알 안 좋은 게임이다. 주사위를 던져서 땅을 사는 거 자체가 아주 나쁜 설정이다. 주사위를 던져서 땅을 사서 부자가 됐다면, 같이 게임하는 사람한테 나눠줄 수도 있고, 상대방에게 돈이 없으면 통행료를 받지 않아야 되는데, 이기겠다는 마음만으로 땅을 가진 사람이 더 이상 돈이 없는 사람 돈을 다 빼앗는 건 아주 나쁘다. 나쁜 규칙이 나쁜 사람을 만든다. 다음에 부루마블을 하게 된다면, 땅 많이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돈 없는 사람에게는 통행료 받지 말고 놀아라. 규칙이 나빠도 나쁜 사람이 되지 말라”고 부루마블에 관한 논평을 하며, 우는 아이를 달래 밥을 먹였습니다.


아이들이 하는 보드게임에 세상의 이데올로기가 녹아있습니다. 저도 어려서부터 놀았고 세계에 있는 도시 이름이나 알려주자고 사주었는데, 무서운 게임입니다. 땅을 갖지 못하고 파산해서 우는 아이를 보니 섬뜩하기도 합니다. 땅을 갖게 된 이가 땅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최소한 통행료를 받지 않는 것으로 이기는 보드게임이 있을까요. 만들어야할까 봅니다.


아세라 상을 찍어 깨뜨려야 하는 이유는 함께 나누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땅이 뿌리를 잡아주기를, 식물이 열매 맺기를 바라는 것이 왜 죄가 되겠습니까. 아세라 신상에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땅과 나무에게 기대하는 종교성이 나쁘다기보다, 아세라 신상 앞에는 함께 먹으며 즐거워 할 사람이 없어서 악한 겁니다. 아세라는 제물을 달라하고, 여호와는 제물을 나누라 하십니다. 제물을 달라하는 신은 우상이요, 제물을 나누라하는 신이 하나님입니다. 제사를 지낼 때 중요한 대상은 신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사에 정통한 ‘큰 대제사장’입니다.(히4:14) 예수께서 ‘큰 대제사장’이신 이유는 예수께서는 제사를 드릴 때 다른 제물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히9:12) 자신을 제물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베드로를 통해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 하십니다.(벧전2:9)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하십니다.(롬12:1) 예수님처럼 큰 대제사장 노릇하라 하십니다.

예배드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부루마블 같은 세상에서 땅 없고, 돈 없는 사람들과 함께 먹고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나를 너에게 먹이라 하십니다. 밥되라 하십니다.


예배는, 누군가에게 밥 되는 것입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