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길을 잃어버렸다 _ 마26:36~46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9.03.31|조회수112 목록 댓글 0

예수께서 노예의 몸값에 팔렸다.(마26:14) 사랑했던 제자들이 예수를 버렸다.(마26:56) 베드로가 예수를 저주하며 부인했다.(마26:74) 예수께서는 자신이 팔리고 버려지고, 부인될 것을 미리 아셨다.(마26:21,31,34)


예수는 기도하신다.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신다. 겟세마네는 올리브기름을 짜던 언덕이다. 올리브기름은 왕이나 제사장을 세울 때 쓰는 기름이었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는 자신의 몸을 기름틀에 넣어 기름을 짜내듯 기도하신다. 거룩한 왕이나 제사장 같은 누군가를 거룩하게 하기 위함인 듯 온 몸의 기름을 짜내듯 기도하신다.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예수께서는 뜻에 저항하신다. 처음 예수의 마음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았다.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은 예수는 사람이었다. 사람 예수는 신의 뜻에 저항하며 기도했고, 다시 기도했다.

“다시 두 번 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마26:42)


뜻에 저항하며 기도하던 예수의 기도가 뒤집어진다. 기도하는 자의 소원이 아니라, 기도를 듣는 자의 뜻에 집중된다. 사람의 소원이 지워지고 하나님의 뜻이 기도하는 자에게 새겨진다. 하나님의 뜻은 못과 창으로 기도하는 자의 몸에 새겨질 것이다. 기도를 시작할 때 예수는 사람이었고, 기도가 깊어지며 예수는 하나님이 되셨다. 하나님의 뜻과 예수의 소원은 하나가 되었다.


“기도하신 후” 떨어진 자리에서 피곤해 졸고 있던 제자들에게, 곧 예수를 팔고 버리고 저주하며 부인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예수의 생애 중 가장 치열했을 마지막 기도, 기름틀에 넣어 온 몸의 기름을 짜내듯 기도하고 있던 시간을 함께 지키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함께 가자”하신다.


또, 예수는 자신을 팔고 버리고 저주하고 부인하며 떠날 제자들에게 다시 만나자고 하셨다.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마26:32)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후에 만나자고 하신다. 처음 만났던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하신다. 제자들에게 팔리고 버림받고 저주당하고 부인되기 전에, 예수께서는 이미 용서하셨던 것이다.


예수는 제자들을 용서하신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팔고 버리고 저주하고 부인하기 전에, 제자들을 용서하셨다. 제자들의 못난 행위가 있기 전에 못난 제자들을 용서하셨다. 흔히 하는 “못났다”는 표현은 거듭나지 않았다는 말이겠다. 못난 행위 이전에 못난 제자들을 용서하시며 제자들을 다시 태어나게 하신다. 용서하는 사람이 사람을 비로소 다시 태어나게 한다. 용서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 사업에 참여하는 신적 인간이다. 그리스도인은 기도하고 용서하는 사람이다. 일흔 번씩 일곱 번.


일흔 번씩 일곱 번 용서하라는 뜻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의 사안에 대해 용서하라는 게 아니라 용서하는 자의 마음을 다잡으라는 것이다. 용서했어도 다시 분노가 솟고, 화가 난다. 나를 버린 사람, 나를 해친 사람, 내 가족을 죽인 사람, 또 버려지고 상하고 죽어야 했던 상황을 용인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분노와 화는 용서했다고 해서 사라지는 건 아니다. 용서한 이후에도 다시 분노가 솟고 화가 난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라는 말씀은 분노가 솟고 화가 날 때마다 다시 기도하며 분노와 화에 지배당하지 말라는 것이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것은, 나를 향한 가해자를 위해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기도하라는 것이다.


겟세마네에서 기도하고, 갈릴리로 가서 다시 만나라 하신다. 기도하고 용서하라 하신다. 사랑하라고 하신다. 용서와 사랑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신적 존재로 거듭나게 하신다.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신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신적 존재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가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 위에 있는가. 르네상스를 열었다고 하는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eri)는 피렌체 시를 통치하는 6인 위원회 중 한 명이었다. 도시국가의 장관이 되어 피렌체를 다스리며 인생의 전성기를 달리고 있던 시절을, 단테는 ‘신곡’의 첫 문장에 담았다.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나는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에

어두운 숲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단테는 자기 인생에서 성공의 정점을 돌아보며, “길을 잃어버렸”다고 회상한다. 예수를 따르는 길 위에 있는지 확인하는 이정표는 성공이 아니다. 성공의 정점은 길이 보이지 않는 위험한 숲속일 수 있다.


성공이 아니라, 순종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는 사람을 얻는다. 팔고 버리고 저주하며 부인했던 사람을 다시 얻는다. 사람을 용서하고 갈릴리를 이정표 삼아 길을 간다. 거기 갈릴리에서, 갈릴리에서 처음 만났던 사람을 용서하고 다시 만나 사랑한다. 길 위에 있는가. 사업의 성공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는 길, 서로 사랑하는 길이 예수를 따르는 길이다. 어쩌면 가고 싶지 않은 길이다. 원해도 주저하게 되는 길이다. 기도해야 겨우 나설 수 있는 길이다. 못과 창을 피할 수 없는 길이다. “나는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나는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다.


기도는 어렵고, 용서는 불가능하다. 길을 잃어버렸다.


*

쉬지 않고 기도하게 하소서. 읽으며 걸으며 운전하며 일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게 하소서.

내 몸이 앉는, 내 손이 닿는, 내 발을 딛는, 내 생각이 미치는 모든 겟세마네에서 쉬지 않고 기도하게 하소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새기게 하소서.

내 마음 속에서 일렁이는 욕구들을 잠잠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으로 내 영혼을 가득 채우소서.

기도했거든 용서하게 하소서. 다시 기도하고 또 용서하게 하소서.

더 기도하고 한 번 더 용서하게 하소서.

갈릴리에서 처음 만났던 못난 사람, 갈릴리에서 다시 만났을 때엔 다시 태어나게 하소서.

주님, 나를 거듭나게 하소서.

성공과 좌절 속에 길 잃어버린 우리를 다시 갈릴리에서 만나시고, 주님 가신 길 가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