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흔들리는 땅 _ 막4:35~41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9.06.02|조회수197 목록 댓글 0



조지아 트빌리시 골목에 무너져 쇠락한 성당이 있습니다. 성당 벽은 허물어졌고, 30여 년 전부터 천장에 흙이 쌓여 풀이 자라고 있습니다. 성당 앞마당은 사설 유료주차장이 됐습니다. 주민들에게 성당이 무너진 이유를 물었더니, 어떤 사람은 충격(blow) 때문이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지진(earthquake)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성당 이름을 아는 사람을 만나진 못했고, ‘아르메니아 성당’이라고만 했습니다. 조지아에 있는 아르메니아 성당은 복구되지 않고 이름도 잃어버린 채 무너져 있었습니다. 땅이 흔들립니다. 성당도 무너집니다. 우리가 사는 땅은 마냥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충격이 오기도 하고, 지진이 나기도 합니다.


흔들리는 땅에 관한 설명으로 성경은 시작됩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1:2) 창세기 저자 모세는 “깊음”이라 표현된 큰 물 덩어리가 땅을 덮고 있는 것 같은 형국이라고 진단합니다. 모세가 바라본 땅은 불안정해서 바다처럼 흔들리는 곳이었습니다.


“바다”는 창조 이전, 흔들리는 세상에 대한 은유입니다. 바람이 불면, 사람이 타고 있는 거룻배는 흔들릴 수밖에 없지요. '바람'은 세상에 흐르는 풍조를 상징합니다. 세상의 풍조를 따라가지 않을 때, 바람은 위험한 것입니다. 작은 거룻배를 타고 있어 더 위험합니다. 세상의 풍조를 거스르며 사는 이에게 흔들리는 땅은 숙명입니다. 땅이 흔들리면 몸이 흔들리고, 몸이 흔들리면 마음도 흔들립니다. 죽을 것처럼 마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흔들리는 배 위에서 예수께서는 잠잠하고 고요하십니다.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혀 들어와 배에 가득”한데,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십니다.(막4:37~38) “죽게 된 것”같은 상황인데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십니다. 어쩌면 죽음이 목전인데, 예수께서는 잠잠하고 고요하게 주무십니다.


예수께서는 풍랑 속에서도 어떻게 고요하고 잠잠하실까요? 믿음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무서워하는 이유가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4:40)


믿음은 지금 너머를 보는 것입니다. 믿음은 여기 너머를 바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지금 여기 너머를 바라보고, 지금 여기와 맞서는 것이 믿음입니다.


지금 여기에는 항상 죽음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죽음의 가능성, 죽을 것 같은 현실이 상존하는 까닭에 땅은 흔들립니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피하려 할수록 흔들리는 땅의 충격파는 강하게 전달됩니다.


예수께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피하시지 않고, 오히려 목적으로 삼습니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숨을 내 쉬며 “다 이루었다”하셨습니다.(요19:30) 예수님에겐 죽음이 좌절이 아니라 목적이었습니다. 다 이루었다 하실 때가 죽음에 닿기 직전이었기에, 예수께서는 코가 물에 잠길 듯 위태한 때에도 잠잠하고 고요하십니다. 바람과 파도 때문에 죽을 만큼 위태한데도 예수는 잠잠하고 고요하십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좌절케 하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 했던, 바람과 바다라도 예수를 제압하지 못합니다. 지중해 바다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같이 유대 땅을 침략해온 로마 군대라도 예수를 감당하지 못합니다.(히11:38) 아니, 지중해 너머에서 불어온 바람같은 로마 군대를 예수께서 제압하십니다.(막5:15)


인생의 목적을 죽음으로 삼고, 하루하루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예수께서도 기도하지 않고는 흔들리는 마음을 잡지 못하십니다. 예수께서도 흔들리시며 “이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 기도하셨지요. 기도할 때에야 예수께서도 목적을 잃지 않으십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도 흔들리셨습니다. 예수께서도 흔들리는 마음으로 기도하셔야 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마음을 다시금 뜻에 정향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저만치 떨어져서 혼자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사람들로부터 저만치 떨어져서 혼자 있으면서, 나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혼자 떨어져 나와 또,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혼자 있을 때,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혼자 차를 운전하는 시간에 함께 대화할 수 있습니다. 혼자 걷고 있을 때에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습니다. 혼자 책 읽으며 함께 속삭일 수 있습니다. 혼자 방에 있을 때에, 함께 큰 소리로 떠들 수 있습니다. 혼자 있을 때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외로울 때에 나는 나와 함께 있고,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뵙습니다.


사실은, 하나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다만, 사람이 혼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을 확인할 뿐입니다.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에서, 함께 확인해야 잊지 않습니다. 우리 삶의 푯대가 죽음에 있다는 것을 혼자 있을 때에 함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기억하며 잠잠하고 고요할 수 있습니다.


잠잠하고 고요한 사람이 바람을 꾸짖고 바다더러 “잠잠하라 고요하라” 명령할 수 있습니다. 잠잠하고 고요한 사람이, 흔들리는 땅을 제압합니다. 무서워하는 나에게 명령하겠습니다. 잠잠하고 고요하라. 예수께서도 우리를 위해 명령하십니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막4:30)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