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있지만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눈이 있어 예수께서 가시는 길을 따라 걷는 중에도 제자들은 예수의 길을 보지 못합니다. 예수를 따라 좁은 길을 걷고 있으면서도 제자들은 좁은 길을 보지 못합니다.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막10:37)
좁은 길을 걷는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가고자 하는 넓은 길로 가고 싶고, 착시를 일으키는 듯 넓은 길로 가고 있다고 여깁니다. 예수께서는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하는데,(막10:45) 제자들은 예수께서 권력을 쥐고 “영광 중에”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 오해합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할 것이라 이미 말씀하셨는데도,(막8:31) 제자들은 예수의 길을 보지 못합니다. 제자들은 눈이 있지만, 예수의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바디매오라는 눈 먼 거지”는 예수와 함께 걷지만 예수의 길을 보지 못하는 제자들을 상징합니다. 바디매오가 살았던 여리고는 문명의 지층이 켜켜이 쌓인 곳입니다. B.C.9000년부터 신석기문명을 일구었던 곳입니다. 오아시스가 있어 물산이 풍부한 곳이라, 로마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에게 헌정했던 도시라고 합니다. 예수께서 활동하시던 당시엔 헤롯의 겨울궁전이 있었고, 로마 군대가 주둔했습니다. 경마장과 원형경기장도 있었다고 하구요. 풍요한 땅 여리고에 문명은 높았고, 여리고를 차지하는 군대는 강했습니다. 거기 여리고에 “눈 먼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여리고에서 다른 데 관심을 두지 않으십니다. 9000년 된 도시의 속살을 더듬지 않고, 그저 지나가십니다.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 나가 실〕 때에”(막10:46) 여리고에 도착하자마자 여리고에서 출발합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나들목을 통과하듯 여리고에 들어와서 여리고를 나섭니다. 안토니우스가 사랑했던 클레오파트라, 헤롯의 겨울궁전, 원형경기장 따위에 눈을 두지 않으십니다. 다만 “바디매오라는 눈 먼 거지”를 만나셨습니다.
바디매오가 로마 군대가 통제하고 있는 여리고에서 “다윗”을 언급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막10:47) 위험한 표현입니다. 로마의 평화(Pax Romana)로 짓눌린 땅에서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는 건 로마의 체제를 깨뜨리자는 선동입니다. 그래서 바디매오를 향해 “많은 사람이 잠잠하라”고 타박했던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사람들의 타박에 개의치 않고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에게 도움을 청합니다.(막10:48) 옛날 다윗이 기도했던 것처럼, 바디매오가 외침 속에 이런 기도가 녹아있었을 것입니다. “구원은 주님께만 있습니다.주님의 백성에게 복을 내려주십시오”(시3:8)
바디매오는 길에 앉아 있었지만 어디로 가야할 지 몰랐습니다. 길을 가고자 하지만, 어디로 가야 길인지 몰라 겉옷을 땅에 펴고 주질러 앉아 있었던 겁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따라 길을 가고자하는 소명과 자기 욕심에 눈이 어두워 어떻게 가야할 지 모르는 무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가려 하나 주질러 앉아 있습니다. 소명으로 눈을 떠 길을 나섰고, 욕심으로 눈이 어두워 주질러 앉은 바디매오는 제자들의 자화상입니다. 자기들 욕심에 잡혀있는 제자들은 서로 다투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합니다.(막10:41)
그럼에도 예수는 이만한 제자들을 인정하십니다. 욕심으로 오염된 소명을 안고 길을 나선 제자들의 걸음과 좌절을 믿음으로 인정해주십니다. 비록 욕심으로 눈이 어두워졌지만, 그래도 “보기를 원하”는 제자들의 마음을 믿음으로 받아주십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막10:51~52) 보지 못해도,
보고자 한다면 믿음입니다. 주님은 이런 믿음도 보십니다.
*
2019년7월14일_민들레교회_김영준 목사_#믿음_#길_#소명_#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