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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유혹 _ 마11:25~30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9.09.15|조회수163 목록 댓글 1

인생이 무겁습니다. 무겁지 않은 인생이 없습니다. 누구나 짐 지고 삽니다. 맨 등으로 짐 지면 무거워서 질 수 없습니다. 인생의 짐은 맨 등에 지고 갈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니까요.


짐 지고 일어나 걷자면 멍에를 메야합니다. 멍에는 짐 지는 자에게 꼭 필요한 도구입니다. 멍에가 있어 인생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 멍에를 메야 짐 지고 걸을 수 있습니다. 인생의 짐이 무거운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29~30) 예수님의 멍에를 메라 하십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면 짐이 가벼워진다 하십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멍에’를 메라 하시는 것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것입니다.(마16:24)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보다 무거운 짐이 있을까요? 멍에를 메야 짐이 가벼워지는 건 맞는데, 그 멍에가 십자가라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멍에는 짐을 가볍게 하는 도구지만, 십자가는 본디 사형(死刑)도구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메라 하시는 멍에가 십자가라면 예수님은 나에게 죽으라 하시는 것입니다.


죽음이 아니고는 내 뜻이 꺾이지 않으니까요. 내가 죽어 내 뜻도 죽고, 하나님의 뜻만 살게 하는 도구가 십자가 멍에입니다. 십자가 멍에를 메는 것은, 내 뜻으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내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마26:42)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온유와 겸손’입니다.(마11:29)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셔서 십자가를 지셨고, 우리에게도 십자가 멍에를 메라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내가 이룰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마6:10) 십자가 멍에를 메면 내 뜻은 죽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까닭에 ‘쉼’이 찾아옵니다.(마11:29)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나에게 쉼이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멍에를 메면 나는 죽고, 하나님께서 살아, 하나님께서 내 짐을 끌고 가십니다. 이제 예수님 말씀이 이해됩니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30)


멍에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 때문에 멍에를 메는 것이 무거운 것 같지만, 멍에를 메는 이유는 짐을 가볍게 하기 위함입니다. 십자가 멍에는 십자가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 때문에 더 무거운 것 같지만, 십자가 멍에를 지라 하시는 것은 쉼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십자가 멍에를 메는 것이 쉽고 가벼운 줄 아는 것, 이것이 지혜입니다. 멍에를 메지 않으면 짐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 멍에를 메겠습니다. 십자가 멍에를 메야 인생이 쉽고 짐이 가벼워집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멍에를 메는 것은 비장한 것이 아니라 기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항상 기뻐하라” 하십니다.(살전5:16)


멍에를 멜 때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멍에를 메는 것이 힘든 것인 줄 착각하지 말고, 오히려 쉽고 가벼운 것인 줄 깨달아 기뻐하라 하십니다. 짐을 피할 수 없다면 기꺼이 멍에를 메겠습니다. 멜 수 있는 멍에가 있어 천운입니다.


물론 메기 싫은 멍에가 있습니다. 옥죄는 멍에가 있습니다. 무거운 멍에가 있습니다. 예수의 멍에 말고, 악한 권력이 강제로 요구하는 멍에가 그렇습니다. 옛날 유다 사람들에게 이웃한 제국들이 강제로 요구하는 멍에는 무겁고 옥죄며 메기 싫은 멍에였습니다. B.C.7세기 유다는 앗시리아에게 조공을 바쳐야 했습니다. 당시 앗시리아는 이집트 테베까지 점령했고, 이미 북이스라엘도 앗시리아에 무너졌습니다. 앗시리아가 요구하는 조공은 유다 사람들이 메기 싫은 멍에였습니다. 하나님은 앗시리아가 테베를 점령하고 있을 때에 선지자 나훔을 통해 앗시리아라는 멍에를 끊어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비록 강하고 많을지라도 반드시 멸절을 당하리니 그가 없어지리라 내가 전에는 너를 괴롭혔으나 다시는 너를 괴롭히지 아니할 것이라 이제 네게 지운 그의 멍에를 내가 깨뜨리고 네 결박을 끊으리라”(나1:12~13)


제국이 강제하는 멍에는 무겁고 옥죄는 멍에요, 천국이 선물하는 멍에는 쉽고 가볍게 하는 멍에입니다. 옛날 앗시리아 같은 제국이 압제와 조공으로 강제했던 멍에를 하나님께서 깨뜨리고 그 결박을 끊겠다고 하십니다. 천국이 선물하는 멍에를 메고 가야할 길 가볍게 걸으라 하십니다. 십자가 지고 가야할 길 쉽고 가볍게 가라 하십니다.


십자가 지고 간다는 건, 십자가를 지신 예수를 따라간다는 것은 죽임당한 자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삼일만세운동, 4•3사건,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416참사 등 역사의 굴곡마다 죽임당한 자의 편에 서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게 아닌, 숨쉬고 있지만 죽음과 같은 일상을 사는 사람들을 살피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여느 사람들이 사는 일상을 살지 못하는 나그네, 장애인, 소수자같은 사람들과 연대하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이제 십자가를 지고 가실 예수님께서, 함께 십자가 멍에를 지고 걷자고 유혹하십니다. 쉽고 가벼운 십자가 멍에를 지고 걷는 것이 유익하다고 유혹하십니다. 정의로운 게 이익이라고 유혹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유혹에 넘어가는 자에게 하늘이 열립니다. 그리스도의 유혹에 넘어져야 땅의 중력이 해제되고 하늘을 걷습니다. 십자가 진 사람들과 어깨 나누는 인생, 가볍게 쉽게, 중력 따위 무시하고, 훠얼훨 살라고 그리스도는 유혹하십니다.


나는 유혹하시는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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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민병권 | 작성시간 19.09.1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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