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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戰士 마리아_눅1:26~33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9.12.22|조회수88 목록 댓글 0

하나님께서 기드온과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사기 6장 12절과 16절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31장 8절입니다.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The Annunciation by El Grecco, c. 1590–1603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신탁은 아무나 들을 수 있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을 들은 기드온과 여호수아는 전사戰士였습니다. 전장의 선봉에 서야하는 전사여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말씀의 수탁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브리엘 천사가 여자 마리아에게 주께서 함께 하신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누가복음 1장 27절과 28절입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결혼을 앞둔 처녀 마리아에게 주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니, 마리아는 당황합니다. 누가복음 1장 29절입니다.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여호수아나 기드온 같은 남자 전사들에게나 하셨던 말씀을 처녀 마리아에게 들립다.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마리아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전사로 부르십니다. 전사가 된다는 건 마리아의 인생계획 속에 없었겠습니다. 마리아가 전사가 된다는 건 마리아를 아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겠습니다.


전사 마리아는 영적전쟁에 참전하게 될 것입니다. 전사 마리아는 선한 싸움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출산하게 될 마리아는 당시 헤롯대왕과 맞서게 됩니다. 헤롯대왕과 맞서는 것이지만 마리아의 전쟁은 잔다르크처럼 전투 부대의 선봉에 서는 게 아니었습니다. 마리아의 싸움은 논개처럼 적장을 껴안고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마리아가 헤롯대왕과 치러야 하는 전쟁은 기드온이나 여호수아처럼 무력으로 대치하는 게 아니라, 도망과 희생을 견디는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마리아의 싸움은 자식보다 오래 살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식보다 오래 사는 것은 숨을 쉬는 마지막 순간까지 끝나지 않는 전쟁입니다. 더군다나 그 아들이 십자가에서 참혹하게 죽었다면 마리아의 전쟁은 평생 끝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이 전사 마리아의 후손입니다.


마리아의 싸움은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사렛 출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무력(武力)을 사용하지 않는 무력(無力)한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무력을 쓰지 않고 세우는 “그 나라”, 도리어 폭력에 희생된 자가 왕이 되어 다스리는 “그 나라”를 세우기 위한 싸움에 하나님은 여자 마리아를 선봉에 세우십니다. 전사 여호수아를 부르셨을 때처럼, 전사 기드온을 부르셨을 때처럼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말씀하십니다. 마리아를 전사로 부르십니다.


처녀가 아들을 갖는다는 건 자연스럽지 않고, 보통사람에겐 없을 일입니다. 상식적이지 않는 일입니다. 마리아가 겪었던 것만큼 황망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건 아니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자연스럽지 않고 보통 사람에겐 잘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곤 합니다. 상식적이지 않은 상황에 빠지기도 합니다. 성공과 안정을 기대하는 게 자연스럽고 상식적인 소원일 것입니다만, 모든 사람들이 성공과 안정 속에 있는 건 아닙니다. 성공한 사람들, 안정된 환경 속에 있지 않다면, 뭔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부르실 때, 낙오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며 불안할 수 있습니다. 실패와 낙오의 이유가 무능은 아닙니다. 불안이 불신은 아닙니다. 성공과 안주가 낭떠러지가 될 수 있기에, 우리는 때로 실패하고 낙오됩니다. 하나님께선 실패와 낙오를 통해 사람이 계획에 넣지 않고 예상하지 못했던 인생으로 부르십니다. 낙오되거나 실패하면 불안합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인도하실 때에도 불안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선 자기 백성을 이 세대의 사람들과 함께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낙오시키기도 하고, 실패하게도 하십니다. 그렇게 불안한 사람을 부르십니다. 본래 계획에도 없었고 예상도 하지 못했던 인생으로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에 응답해 나선 길 복판엔 절벽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선 낭떠러지로 떨어질 길을 막으시고 절벽으로 올라가야 할 길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선 성공과 안정이라는 낭떠러지로 난 길을 막아서십니다. 하나님께선 특별한 소명을 받은 사람에게 절벽으로 난 길을 가리키십니다.


절벽을 오르는 것은 제자리를 걷는 듯 진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절벽을 아무리 오르고 올라도 네비게이션 위에선 움직이지 않는 점처럼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간다 해서 반드시 진보하는 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앞으로 뚫린 게 아니라 위로 열려 있습니다.


한 걸음도 앞으로 가지 못하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절벽 위를 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인생에 진보가 있진 않았습니다. 마리아의 인생을 성공했다 할 수 없고, 안정적이었다고는 더더욱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던 전사 마리아의 인생은 도망과 희생과 불안과 고통으로 아득합니다. 마리아는 평생 절벽을 오르듯 살았겠습니다.


매일 걷지만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면, 그래서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았다면, 절벽을 오르고 있는 겁니다. 성공과 안정을 향해 한 걸음도 걸어보지 못한 마리아처럼 네비게이션 상에서 보면 정지된 것 같지만, 날마다 하늘에 가까워지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전사 마리아와 함께 하셨던 것처럼, 절벽을 오르는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특별한 부르심 속에 있다면 내 삶의 좌표가 어디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보수냐 진보냐, 성공이냐 실패냐 따위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디로 가야할 지 알 수도 없습니다. 어디에 있느냐 어디로 가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하느냐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어디에 있든, 장차 어디로 가든 중요한 건 좌표가 아니라 고도입니다. 저 높은 절벽을 향하여 올라가는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함께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린다면, 절벽을 오르는 전사戰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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