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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새해는 겨울에 시작된다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20.01.11|조회수77 목록 댓글 1


고흐, 《가지치기한 버드나무》, 1888


버드나무가 서 있다. 잎이 떨어졌고 가지치기를 했다. 남아있는 가지는 몇 가닥 되지 않고 이파리가 하나도 남지 않아 앙상하다. 앙상한데, 약해보이진 않는다. 남아있는 가지들이 가늘어 앙상하기 짝이 없는데 약해 보이지 않는다. 약하긴 커녕 가늘어 앙상한 가지가 살아 꿈틀거리는 것 같다.

 

나무줄기에 붙어있기 때문이다. 앙상한 가지가 약해보이지 않는 이유는 도끼질도 튕겨낼 성 싶은 강한 줄기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15:5)

 

가지가 붙어있는 담청색 나무줄기는 쇠 다발로 뭉쳐진 근육 같다. 나무줄기에서 쩌렁 금속성이 느껴진다. 가지의 두께 때문이 아니라 줄기의 단단함 덕분에 앙상해도 약하지 않다. 앙상한 가지가 단단한 줄기에 붙어있는 까닭에 가지는 조금도 약해보이지 않고, 살아 꿈틀거린다.

 

누렇게 마른 풀들이 날카롭게 버드나무를 포위하고 있다. 포위당한 버드나무는, 그럼에도 스스로를 조금도 위태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가지는 잘려나갔고 이파리도 없는 주제에 당당하기 짝이 없다. 신성한 빛을 뿜어내는 노란 태양이 비추는 까닭에 부족함이 없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23:1)

 

이파리도 없는 주제에 앙상한 가지는 광합성을 하는 듯 연두 빛이 돈다. 고흐에게 노란 색은 신성한 색이다. 다른 작품들에서 고흐의 노란색은 하늘의 별처럼 사람이 닿을 수 없는 이상적인 존재다, , 나사로를 소생시키는 예수를 상징하기도 한다. 강철 근육 같은 줄기에 붙어있는 가지들이 신성한 노랑 빛을 받아, 사각 캔버스를 뚫고 지나가 하늘로 쭈욱 뻗어있다. 겨울 버드나무 가지들은 분명 앙상한데, 신성한 빛을 받은 까닭에 조금도 처연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고 싱그럽다.

 

세 그루가 나란히 서 있고, 멀리 가로로 두껍에 칠한 담장 모양의 담청색 띠는 저만치 서 있는 버드나무들이겠다. 담장 모양의 담청색 띠는 파도 같기도 하다. 겨울 풍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달려드는 파도 같다. 버드나무 파도에 휩쓸리면 멀게 느껴지는 봄기운에 미리 따뜻하겠다. 겨울 복판에 나란히 서 있는 동지가 있어, 이미 봄이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17:21;공동번역)

 

겨울 버드나무처럼 나란히 서 있는 우리가, 천국 같은 봄을, 휩쓸어 덮치듯 알리는 담청색 파도 아니겠는가.

고흐는 겨울 들판에서 쇠 근육 같은 줄기, 연두 빛 도는 가지, 싯노란 태양, 나란히 서 있는 나무들을 그렸다. 새해에 나는 무엇을 그릴 것인가. 올해도 새해는 겨울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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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영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1.11 목회와신학 2019년 1월호 그림묵상,을 증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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