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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 _ 약3:17~12;5:12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20.03.27|조회수52 목록 댓글 0

초대교회 중 기둥 둘을 꼽으라면, 예루살렘과 안디옥이겠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를 중심으로 박해와 기근을 견디며 모였고, 안디옥에서 모이는 교회는 이방인들을 위한 선교사로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했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이방인 선교에 역점을 두었던 바울이 믿음으로 구원의 시작을 강조했다면, 예루살렘에 남아 로마의 위협과 기근을 겪어야했던 야고보는 행함으로 구원의 완성을 도전했습니다. 믿음과 행함 모두 교회가 품고 있는 교리의 핵심입니다. 믿음과 행함은 충돌하는 교리도 아니고, 우선순위를 정할 것도 아닙니다. 믿음과 행함은 구원의 두 기둥입니다.

 

믿음과 행함은 그 뿌리가 같습니다. 믿음과 행함 모두 들음혹은 듣기가 그 뿌리입니다. 바울은 들음에서 믿음이 비롯된다고 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비롯됩니다”(10:17) 야고보는 말하는 걸 더디하고 듣기를 속히하라고 합니다. “누구든지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노하기도 더디 하십시오.”(1:19)

 

들어야 믿을 수 있습니다. 들어야 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은 아브라함은 길로 나섰습니다.(12:1~3)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은 길로 나서길 행하였고, 이것을 믿음이라 인정받았습니다.(15:6) 아브라함에게 행함과 믿음은 한 가지였고, 들음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듣는 것과 읽는 것은 한가지입니다. 성경을 비롯한 책을 읽으며 하나님의 뜻을 듣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유묵으로 남겨 더 기억에 남는 논어 한 구절입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 행함 없이 혀가 거칠다면, 불신과 저주의 말이 혀에서 생산된다면, 가장 가까운 원인을 꼽는다면 부독(不讀)입니다. 읽지 않아 성찰하지 않고,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선 혀를 길들이지 못합니다.

 

온갖 가짜뉴스가 통제받지 못한 혀에 실려 넘쳐납니다. 소위 기독인들이 생산하는 가짜뉴스들이 도를 넘고, 다른 정파나 정견을 가진 사람들을 향한 저주가 난무합니다. 바르게 읽지 않고, 바른 걸 듣지 않기 때문이겠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혀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을 저주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혀로 누군가를 혐오하거나 차별합니다. 이러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혀는 해야 할 때 하고, “아니오해야 할 때 아니오합니다. 선한 제안에 하며 순종하고, 악한 압력엔 아니오하며 저항합니다. 의롭거든 이익이 없어도 하며 순종하고, 이익이 많아도 의롭지 않으면 아니오하며 저항하는 혀가 길들여진 혀입니다.

 

우리 몸의 혀는 배의 키(rudder) 같습니다. 혀를 제어해야 우리 몸이 가야할 길을 바로 갑니다. 선한 뜻에 순종하고 악한 의도에 저항하며, 가야할 길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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