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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속 부활 _ 삼상2:4~8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20.04.26|조회수126 목록 댓글 0

현실 속 부활

_ 김영준 목사

 


비둔하고 앞을 보지 못하는 제사장 엘리가 목이 부러져 죽습니다.(삼상4:15~18) 제물을 함부로 대하고, 섹스 스캔들까지 일으킨 엘리의 아들들도 죽습니다.(삼상2:17,22;4:11) 엘리는 40년 동안 사사로 일했지만 노추했고, 아들들은 타락했습니다. 엘리는 40년 동안 사사로 일했고, 아흔여덟까지 살았지만, 죽습니다. 아들들까지 함께 죽었습니다.

 

사무엘이 남았습니다. 사무엘은 엘리의 아들이 아니었지만, 비둔하고 눈 어두운 엘리의 장막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삼상3:11~14) 엘리는 둔했고, 엘리의 아들들은 타락했지만, 하나님의 뜻은 여전히 울렸습니다. “주님께서는 실로에서 계속하여 자신을 나타내셨다. 거기에서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사무엘이 말을 하면, 온 이스라엘이 귀를 기울여 들었다.(삼상3:21~4:1)

 

조직으로서 교회는 타락했습니다. 개인으로서 목사도 타락했습니다. 조직의 일원으로서 또 목사로서 김목사도 성찰하고 삼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눈멀고 비둔한 조직을 통해 일하시지 않고, 타락한 목사에게 말씀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않는 조직은 무너져야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목사는 그 가르치는 일을 멈춰야합니다.

 

하나님은 엘리의 가문을 무너뜨리시고,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법궤를 모신 군대와 함께 참전했지만 죽음으로 파면당합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맡았다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에게 하나님의 법궤는 나무상자일 뿐입니다. 나무상자의 안위를 염려하던 엘리의 몸은 결국 무너졌습니다. 무너져야 할 것이 무너지고, 물러나야 할 것이 물러나는 게 은혜입니다. 현실에선 잘 이루어지지 않으니까요, 타락한 조직이 무너지고 음란한 개인이 파면되는 건 은혜입니다.

 

조직이 무너져도 지도자가 없어도 하나님의 법궤는 일하십니다. 블레셋 군대가 노획한 하나님의 법궤를 다곤Dagon신전에 두었는데, 하나님의 법궤 때문에 다곤 신상이 넘어져 머리와 두 팔목이 부러집니다.(삼상5:4) 하나님의 법궤를 포로삼은 마을마다 악성종양이 퍼집니다.(삼상5:9,12)


 John Singleton CopleySamuel Relating to Eli the Judgements of God upon Eli's House 


하나님은 전문가 집단 혹은 가문을 통해 말씀하시거나 일하시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일하시며 어린 사무엘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전문가 집단인 신학교나 교회조직을 통하지 않고도 스스로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신학을 전공한 목사를 통해서만 말씀하시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에겐 타락한 교회조직 따위 필요하지 않고, 타락한 전문가의 입술을 역겨워하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법궤를 다룬 적이 없었을 어린 사무엘의 마음에 하나님의 뜻을 새겨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만화 성경을 읽는 아이의 입술을 통해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소박하게 예배드리는 가정의 가장을 제사장으로 인정하십니다. 우리가 얼마든지 가정에서, 혹은 독방에서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교회조직이 타락하고, 목사들이 스캔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죽어가는 예배당은 어쩌면 거룩한 공간이 아닙니다.

 

사무엘이 있어 그래도 소망이 있습니다. “어린 사무엘은 커 갈수록 주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삼상2:26) 앞을 보지 못하고 비둔한 엘리와 타락한 그 아들들의 장막에 사무엘이 있었던 것처럼, 타락한 교회조직과 스캔들 투성이 목사들이 지도하는 현장에서도 순전한 믿음이 자랍니다. 결국 타락한 조직과 지도자는 죽겠지만, 어린 믿음이 태어나고 자랍니다.

 

부활은 이렇게 현실입니다. 나무상자를 관리하던 타락한 세대가 죽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순전한 아이들로 부활합니다. 앞을 보지 못하고 비둔한 제사장 마음속에 죽어있던 하나님의 말씀이 천지분간 못하는 아이를 통해 부활합니다. 성소에서 그저 나무상자에 지나지 않았던 하나님의 법궤는 오히려 이방신전에서 위력을 떨치며 스스로 일하십니다. 이렇게 부활은 현실입니다.

 

나는 부활을 믿습니다. 현실 속 부활을 믿습니다. 씨앗이 죽어 나무가 되는 것처럼, 씨앗을 볼 땐 도저히 상상할 수 없던 생명이 자라고 있습니다. 엘리가 죽고 사무엘이 자랍니다. 타락한 엘리의 집에서 사무엘이 자랐던 것처럼 타락한 교회조직 속에서 순전만 믿음들이 자라는 것, 부활입니다. 타락한 조직이 죽어 이전에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순전한 생명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코로나19바이러스를 경험한 교회와 사회는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껍데기를 벗고 탈태하며 이전과 다른 생명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부활은 죽은 육체가 다시 살아나는 소생甦生 이상의 것입니다. 사람의 육체가 소생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이 영원히 산다는 것은 역사를 산다는 뜻도 포함됩니다. 현실에서 죽더라도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사는 것도 부활이요, 죽은 육체가 다시 흙이 되어 뭇 생명을 살게 하는 것도 부활입니다. 육체의 부활뿐만 아니라, 역사와 자연 속에서 영원히 사는 것 역시 부활입니다. 소생하는 것이 부활의 전부는 아닙니다. 소생 이상의 부활을 소망하는 것이 또한 우리의 믿음입니다.

 

4월은 부활의 계절입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것을 목격하는 계절입니다. 꽃이 피고, 싹이 돋고, 순이 자랍니다. 4월은 죽음의 계절입니다. 제주43사건이 있었고, 대구에서 시작된 419혁명이 있었고, 416세월호 참사가 있었습니다. 왜 죽는지 모른 채 참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자들의 소생과 역사 속에서의 영생을 나는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 비둔하고 밝게 보지 못하는 일상 속에서도 어린 믿음이 자랄 것입니다.

 

믿음으로, 현실 속 부활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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