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선량한 차별주의자" _ 창1:27~31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20.07.04|조회수77 목록 댓글 0

베트남에서 온 이주민들과 검정고시 공부를 했었어요. 수업할 때마다 먹을거리를 나누며 말소리와 음식 넘기는 소리가 섞여 풍성한 책상을 경험했습니다. 한 번은 사과를 깎는데, 제가 깎는 방향과 달랐습니다. 저는 바깥에서 안쪽으로 칼을 돌리는데, 베트남에서 온 이주민들은 안쪽에서 바깥으로 칼을 돌렸습니다. 낯설었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니 합리적이었습니다. 바깥쪽으로 돌려야 칼날이 자신의 몸쪽으로 향하지 않습니다. 과일을 깎을 때 칼은 가슴 높이에 있기 때문에 안쪽으로 깎는 건 위험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시아버지께서 이렇게 과일 깎는 걸 싫어하신답니다. 과일 깎을 때마다 혼난다고 입을 삐쭉였습니다. 시아버지한테 혼나면서도 과일 깎는 법을 바꾸지 않는 베트남 이주민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그게 바꿔지지도 않습니다. 음식 차릴 때 속도가 중요한데, 20년 넘게 반복한 과일 깎는 방식을 바꾸기도 어렵고 그럴 필요도 없겠지요.

 

이주민들에게 해선 안 될 말이 있습니다. “이제 한국사람 다됐네

 

격려하며 하는 말입니다만, 여기엔 우월한 한국사람이란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한국에 사는 이주민은 열등한 사람이란 판단을 내리고, “한국사람이 되어야한다고 격려하는 말인 것입니다.

 

한국에서 다수에 속한 한국사람이라는 우월감으로 내뱉는 말처럼, “선량한사람들은 의도하지 않게 차별주의자가 되곤 합니다. 장애인들을 비정상이라고 여기고, “정상에 속한 것에 안도하곤 합니다. 장애가 있는 게 비정상은 아닙니다. 소위 정상에 속한 선량한사람들이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가지세요라고 위로한다면 그 또한 차별주의자의 말입니다. 장애인의 상황을 절망적 상황으로 판단하는 것이요, 장애인이 아닌 것에 스스로를 위로하려는 의도가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정상이다다수에 속한다는 뜻일 뿐입니다. 다수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판단하며 다수자들은 소수자를 동정하고 연민하며 스스로 안도하곤 합니다. 동정과 연민은 사랑이 아닙니다. 동정과 연민 속엔 안도하는 마음과 우월감이 녹아있습니다. 동정과 연민은 내가 더 낫다는 교만을 포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옛날 바빌로니아 노예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이었습니다. 모든 존재는 그가 노예일지라도 천재(天才)입니다. 하나님께선 천재인 노예들을 동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선 천재인 노예들에게 연민을 품지도 않으십니다. 천재 노예들에게 바빌론 사람 다 됐다고 격려하지도 않고, “희망을 가지라고 위로하지도 않습니다.

 

선언하십니다. 노예들에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이라고 선언하십니다. 노예들에게 복 있는 사람이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은 노예들에게 복이 있을 것이라 선언하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라고 선언하십니다.

 

예수께서도 선언하십니다. 가난한 사람이, 슬퍼하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복이 있다고 선언하십니다. 예수께서는 가난한 사람을, 슬퍼하는 사람을,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을 동정하거나 연민하시는 게 아니라 복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하셨습니다.

 

어설프게 동정하거나 연민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각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동정과 연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신 사람을 깎아내리는 것입니다.

 

성령강림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오시길 기대합니다. 성령은 보이지 않는 존재입니다. 육체를 지니고 사는 우리에게 성령은 참으로 낯선 존재입니다. 성령과 만나는 건 낯선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령을 만난 사람은 개방적인 사람입니다. 성령의 임재는 낯선 존재들을 만나면서 현실이 됩니다. 낯선 존재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는 게 방언을 말하게 되는 기적이구요. 성령께서 오시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만나고, 성령께서 오시면 선주민과 이주민이 만나고, 성령께서 오시면 이성애자와 동성애자가 만나고, 성령께서 오시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이 만나고, 성령께서 오시면 노인과 청년이 만나고, 성령께서 오시면 경영자과 노동자가 만납니다. 육체를 지닌 사람이 보이지 않는 성령을 만난다면 만나지 못할 낯선 존재란 없습니다. 성령을 만난 자는 누구와도 의사소통하는 방언을 갖게 됩니다.

 

그간 동정과 연민으로 사람들을 만났던 게 아닌가 되돌아봅니다. 바빌로니아 노예들을 복 있는 사람이라 하신 하나님의 선언에 무지했고, 가난하고 슬프고 광야에 서 있고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사람들에게 복 있는 사람이라 하신 예수임의 선언을 오해했습니다. 이제 회개합니다. 동정이 아니라 존경으로, 연민이 아니라 기쁨으로 사람들을 만나겠습니다.

 

공간 민들레와 달팽이2020629일부터 저녁 책방입니다. 책을 통해 낯선 생각을 만나고, 책방을 통해 낯선 사람을 만나겠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오시는 낯선 하나님, 성령의 임재를 경험할 것입니다. 저녁에 뵙겠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